“핵무력은 내려놓을 수 없는 만능의 보검”이라고 주장해온 북한이 “비핵화를 논의할 수 있다”고 한 데 이어 공식회의에서 새 노선을 채택하고, 대내외에 천명한 의도가 무엇인지 주목된다. 지난달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을 때 달았던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과 같은 단서도 붙이지 않았다. 청와대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매우 좋은 뉴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드러냈다고 보기 힘든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우선 비핵화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았다. 기존 핵 물질이나 미사일 탄두에 대한 언급도 없다. 핵 동결과 관련해서도 핵 실험장 폐기 조치만 내놨을 뿐, 영변 등 핵 시설 가동을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가 없다.
오히려 북한이 핵 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는 데 방점을 뒀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정은이 “핵과 타격수단(미사일) 개발이 과학적으로 진행돼 핵무기 병기화가 완결됐다”고 한 데서 잘 드러난다. 그런 마당이라면 핵 실험장 폐기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풍계리 핵 실험장은 이미 노후화해 더 이상 사용하기조차 힘들다. 이번 조치를 본격적인 비핵화 의지로 연결짓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은 2008년 6월 핵 개발을 중단하겠다는 뜻으로 영변의 냉각탑을 폭파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은 선례가 있다.
대화의 장으로 나오겠다는 북한의 의지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핵 실험장 폐쇄’라는 충격요법이 대화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가고, 제재 완화를 노린 협상 기술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김정은이 핵 보유국임을 재차 천명한 것도 핵 폐기 협상 과정에서 몸값을 올리고 보다 많은 보상을 요구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남북한 정상회담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의 확고한 핵 폐기 약속과 그 로드맵을 받아 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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