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현 기자 ]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지난 17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권고안에 국가예술위원회(가칭) 설립 내용을 담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정책 기능을 국가예술위로 넘기고 문체부 내 예술 지원 부서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블랙리스트는 예술가 지원 배제 명단을 말한다. 박근혜 정부와 청와대,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이 1만 명에 이르는 명단을 만들어 이념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예술인을 지원 사업에서 제외했다. 진상조사위는 문체부와 소관 공공기관 사이의 위계적인 구조를 블랙리스트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문체부가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 지원 실무를 맡은 기관들이 ‘충직하게’ 이를 따랐다는 것이다. 그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진상조사위는 국가예술위라는 새 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국가예술위도 위원회 조직이란 점이 다를 뿐 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정부 기구다.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간섭에서 벗어나겠다면서 ‘국가’라는 이름을 단 사실상의 공무원 조직을 하나 더 만들자는 ‘거꾸로 가는 대안’을 내놓은 셈이다. 지난 18일 열린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강경석 문화평론가도 “국가예술위 설립은 다소 급진적인 면이 있다”며 “기존 문화예술 전문기관인 문화예술위원회 등에 자체 인사권과 예산권을 확보해 주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위 권고안에는 블랙리스트 사태와 무관한 주문도 들어 있다. 문체부의 국정홍보(공보) 기능을 분리하라는 내용이다.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하는 문체부가 정부 주장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조직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지난해 취임 후 7실16관이던 문체부 조직을 4실5국11관 체제로 개편했다. 진상조사위 권고대로라면 4실 중 ‘문화예술정책실’과 ‘국민소통실’ 두 곳 문패도 떼야 한다. 문체부로선 ‘차 떼고 포까지 떼라’는 조직 해체 수준의 권고안을 받아든 셈이다. 진상조사위를 출범시키고 공동위원장을 맡은 장관이 결국 자초한 일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진상조사위는 최종 권고안을 다음달 8일 대국민 보고 행사를 통해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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