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이란 '괴물' 낳은 네이버 뉴스 서비스
댓글 윗자리 차지하기 위해
'좌표' 찍고 공감 주는 일 급증
1인당 ID 3개까지 허용
1000명이면 '댓글창' 좌지우지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반복 작업
불법이지만 적발하기 어려워
[ 이승우/김주완 기자 ]
국내 1위(점유율 75%)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뉴스 서비스에서 댓글의 ‘공감’ 수를 매크로(반복명령 자동 실행) 프로그램으로 조작한 혐의를 받는 ‘드루킹(필명)’ 김모씨(48)가 지난달 25일 구속기소됐다. 포털 댓글 여론의 두 얼굴이 여실히 드러난 계기가 됐다.
드루킹의 행태를 보면 온라인 여론이 어떤 식으로 조작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드루킹은 더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이 우선 노출되도록 한 네이버 댓글 시스템을 악용했다. 이를 위해 아이디 불법거래는 물론 매크로 프로그램까지 활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이디 불법거래와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이 같은 구조적 ‘맹점’을 방치한 네이버의 댓글 시스템 역시 대대적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상대편 댓글 밀어내라”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지난해 세계 36개국에서 주로 이용하는 디지털 뉴스 소비통로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인터넷 포털을 통해 뉴스를 읽는다는 답이 77%로 나타났다. 36개국 중 압도적인 1위로 세계 평균인 30%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네이버 뉴스를 보는 하루 평균 사용자(DAU)는 1300만 명에 이른다.
네이버가 사람들의 뉴스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보니 네이버의 댓글창에선 항상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지금도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같은 의견의 댓글을 먼저 보여주기 위해 전투 중이다. 뉴스는 물론 그 아래 달린 댓글이 사람들의 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뉴스 서비스에서 댓글 기능을 제공한 것은 2004년이다. 최근에 달린 순서대로 댓글을 보여주는 방식이 10년 넘게 이어지다 2015년 공감 비율이 높은 댓글을 우선 보여주는 ‘호감순’을 도입했다. 댓글의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충돌이 본격 시작된 배경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이른바 ‘좌표’(뉴스 링크)를 찍고 같은 의견에 공감을 주거나 반대 의견에 비공감을 주는 일이 늘어났다. 네이버는 지난해 비공감에 가중치를 주는 방식 대신 단순히 공감 숫자에서 비공감 수를 뺀 공감 비율순과 순공감순 배열 방식을 도입했다.
사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취지에서 만든 제도지만 네이버가 ‘댓글 전쟁’을 조장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1000명만 있으면 댓글창 쥐락펴락
이 같은 ‘댓글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소수라는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된다. 네이버의 댓글 통계를 제공하는 사이트 워드미터에 따르면 지난 21일 네이버에서 기사 댓글을 작성한 이용자는 10만9164명이다. 하루에 네이버 기사를 보는 사람이 1300만 명 수준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전체 이용자의 0.8%만이 댓글을 다는 것이다.
이들이 하루 동안 쓴 댓글은 26만8451개인데 10개 이상 댓글을 작성한 사용자는 3336명이었다. 네이버는 한 사람이 아이디를 3개까지 만들 수 있다. 1000명만 있으면 댓글창의 의견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란 뜻이다. 드루킹은 600여 개의 네이버 아이디를 사용해 댓글을 달거나 추천수, 공감수를 조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털업체의 아이디 불법거래도 급증하는 추세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아이디를 불법거래한다는 게시물의 적발 건수는 8956건으로 1년 전(2841건)보다 세 배 이상 늘어났다. 주로 인터넷 쇼핑몰 등의 거짓 평가·홍보나 여론 조작, 불법도박과 성매매 등 각종 범죄에 악용됐다.
◆“매크로 잡아내기 어려워”
드루킹은 여론 조작에 매크로 프로그램도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매크로는 단순 반복적 작업을 프로그램화해서 자동으로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다.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키보드 입력값과 마우스 클릭 등 작업을 매크로 프로그램에 입력·저장해 반복 실행하도록 할 수 있다.
드루킹은 수백 개의 아이디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공감수를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접속시간과 인터넷 주소만 무작위로 바꿔가면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릴 경우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보안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네이버의 ‘방조’가 이 같은 사태를 낳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댓글은 뉴스 콘텐츠를 통해 포털로 들어온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용자 체류 시간은 광고 단가와 직결된다. 논란이 클수록, 편을 갈라 싸울수록, 댓글이 많아질수록 네이버엔 이득인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드루킹이 불법을 저질렀는지와 별개로 이런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네이버의 댓글 시스템도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우/김주완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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