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고미술품의 글로벌화를 許하라

입력 2018-04-25 17:42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최근 미국 뉴욕 크리스티의 ‘한국·일본 미술품’ 경매에서 조선 전기 ‘분청사기편호’가 33억여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예상 응찰가의 20배가 넘는, 분청사기 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해외에서 이렇게 우리 고미술품이 고가에 경매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뿌듯하면서도 허전하다. 해외 메이저 경매에서 한국인이 소장한 국내 고미술품은 찾아보기 어려워서다.

이번에 낙찰된 분청사기 소장자는 일본의 유명 컬렉터였다. 1996년 호암갤러리에서 열린 ‘조선전기 국보전’에도 출품된 이 분청사기는 1930년대 후반부터 일본인이 소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주요 경매에서 일본, 중국 고미술품은 별도의 도록(圖錄)을 만들 정도인데 비해 한국 고미술품은 손에 꼽을 정도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는 게 고미술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분청사기 최고가 낙찰의 이면

왜 그럴까. 문화재보호법이 고미술품의 해외 반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서다. 문화재보호법 제60조는 국보나 보물이 아니더라도 제작 또는 조성한 지 50년 이상이고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서화, 도자기, 조각, 공예품, 고서적 등을 수출 또는 국외로 반출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요 문화재 외에는 해외 반출이 자유로운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국내 고미술 시장의 침체 상황은 심각하다. 4월에 고미술전을 열었던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는 출품작의 5%도 팔리지 않았다며 울상이다. 지난해에 비해 20%가량 싸게, 도자기 경기가 가장 좋았던 2006~2007년의 5분의 1 가격에 내놨는데도 그렇단다. 그나마 1000만원 이상의 고가품은 아예 팔린 게 없다고 했다. 2000만~3000만원 하던 걸 600만~700만원에 내놔도 안 팔린다는 것이다.

시장 침체 이유로 고미술품의 해외 반출 규제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고미술품이 좁은 국내 시장에서만 맴돌기 때문에 공급에 비해 수요가 턱없이 적고 가격이 계속 떨어진다는 얘기다. 국내에선 찾는 사람이 없어 거래가 올스톱된 토기의 경우 해외에선 수요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발에 차인다’고 할 정도로 흔한 3만원, 5만원짜리 토기도 내보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고질적인 위작·감정 시비까지 더해져 시장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이다. 고미술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최고가로 낙찰된 분청사기도 국내에서 거래됐다면 1억5000만~2억원밖에 못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침체된 고미술 시장, 해법은

고미술 시장을 살리려면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를 제외한 일반동산문화재의 거래를 해외에 개방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적잖은 전문가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놓고 말하기를 꺼리는 것은 ‘문화재 유출’ 논란에 휩싸일까 염려해서다. 하지만 불법 유출된 해외 소재 중요 문화재를 환수해 오는 것과 국내 고미술품의 수출을 허용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한국 문화재가 국내에 있어야 우리 문화의 위상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야 제대로 평가받고 위상이 올라간다는 지적이 많다.

일찍부터 주요 문화재를 뺀 나머지 고미술품의 국내외 거래를 자유롭게 한 일본은 소더비, 크리스티 등 글로벌 경매회사들이 별도의 도록을 갖출 정도로 매매가 활성화돼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록에 작품이 실려야 제값을 받는다. 반면 우리는 시장을 걸어 잠근 까닭에 해외 소장가들이 한국 시장 참여를 꺼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현대미술, 서양미술에 밀려 고전하는 고미술이 또 다른 장벽에 막혀 있는 셈이다. 한국 고미술품의 글로벌화를 위한 개방, 더 늦출 일이 아니다.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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