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에세이 연재의 마지막 편이다. 이과 전공자로서 에세이에 도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간의 쉼 없는 연구자의 삶, 그리고 경영자로서의 수행과도 같은 건조하다면 건조한 여정 속에서 ‘인문학적 고찰’이라는 스스로의 명제를 만들고 잠시 숨돌리는 마음으로 선뜻 글을 썼다. 내가 쓰는 글이, 내가 하는 말이 어떻게 전달될지에 대해 고민하며 수없는 고쳐 쓰기의 결과가 지면에 연재되는 그 순간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던 설렘 혹은 긴장감 같은 흥미로운 느낌들을 즐길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노출돼 있고, 그중 대부분은 말과 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과도한 정보 속에서 묘하게 눈과 귀를 끄는 언어들이 있다. 그런 언어는 분명히 아주 잘 자란 나무와 같이 충분한 영양소를 기반으로 한 언어이거나, 예술가의 피땀 어린 고찰과 숙련된 기술로 빚어낸 예술작품 같은 결과물인 말과 글이다. 이런 언어, 즉 문장 혹은 언변을 만나면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때로는 따뜻함을 넘어 울림을 주기도 하고 그 울림이 우리를 움직이게도 한다.
요즘 언어에 대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말본새에 사회적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은 분명 우리도 문화선진국으로 나아가려는 긍정적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미 문화선진국인 프랑스의 언어인 ‘톨레랑스’나 ‘뉘앙스’ 같은 단어들이 자주 떠오른다. 특히 ‘뉘앙스(nuance)’는 우리말의 ‘말본새’와 같이 가장 정이 가는 단어다. 같은 언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까지 헤아리는 언어적 감수성이 나의 화두다.
인생의 긴 시간을 현미경 속의 우주를 공부했듯이, 인문학의 우주에서 만난 말과 글의 아름다움은 이 연재가 끝나도 여운이 길게 갈듯하다. 짧은 지식으로 쓴 언어를 귀하게 여겨주신 한국경제신문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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