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현장이면 어김없이 달려가는 차량들이 있다. 경찰차, 앰뷸런스, 소방차, 보험회사차다. 이들보다 먼저 도착하는 게 레커(견인차)다. 레커 기사에게 도착 속도는 일거리를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를 의미한다. ‘도로의 무법자’처럼 질주하고, 경찰 통신을 엿듣는 것도 생존이 달렸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면 어떨까. “사고 현장 일등 도착자는 변호사”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변호사가 많고, 경쟁도 치열한 사회라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변호사가 끼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변호사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할리우드 영화의 한 특징이다.
실력 차나 양극화로 보면 요즘 한국 변호사업계도 만만찮다. 호시절에 사법시험 합격해 검찰이나 법원에서 요직, 고위직 다 지낸 변호사와 로스쿨 변호사는 비교 자체가 무리다. 많이 해소됐다지만, 판·검사를 지낸 사시 출신 변호사들에게는 ‘전관 예우’라는 유별난 특권과 ‘기수’라는 기득권 문화가 있다.
천차만별, 고무줄 같은 변호사의 수임료와 관련해 우스개 같은 말이 있다. “책정 기준은 딱 두 가지, 의뢰인이 얼마나 절실한 상황인지와 지급 능력.” 이것도 ‘전관’에게나 해당하는 얘기일 것이다. 의사는 이 점에서 다르다. 환자의 지급 능력도, 생명이 걸린 다급함도 병원 청구서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정부가 의료수가를 전면 통제하는 까닭이다.
전국 25개 로스쿨의 7년간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로스쿨은 김영삼 정부 때 ‘세계화 전략’의 하나로 도입이 결정됐다. 변호사를 늘려 경쟁을 촉진하고, 서민들도 전문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합격률을 보면 로스쿨 간 최대 3배나 차이 났다. 이 바람에 ‘변시 낭인’이 과거 ‘사시 낭인’을 대신하고 있다는 쓴소리도 들린다. 3년간 학비도 만만찮은데 힘겹게 졸업하고 변시를 통과해도 로스쿨 변호사를 환영하는 곳은 많지 않다. 우수한 인력이 값비싼 비용을 치러 변호사가 되고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큰 낭비다.
‘배고픈 변호사는 굶주린 사자보다 더 무섭다’는 미국 격언을 말하지 않더라도, 법 전문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 넓은 국제 무대로 진출하도록 유도하면 어떤가. 통상과 투자가 확대될수록 법률가들 일거리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베트남이 그런 점에서 주목받는다고 한다. 최근 김앤장까지 가세하면서 국내 대형 로펌 7곳 모두가 호찌민과 하노이에 사무실을 냈다. 중국이든 동남아든 더 나갈 필요가 있다. 지난해 말로 국내 변호사는 2만4015명, 2022년엔 3만 명이 된다. 2008년 1만 명에서 놀라운 증가세다. 한국형 법률 전문가를 국제 시장으로 보내는 데 로펌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겠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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