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현 기자 ] ‘그 문을 열기 전까지 산 채로 썩어간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이해한 게 아니었다. 주황빛 전구 아래 만 마리가 넘는 닭이 철창 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 울고 있었다. …메스꺼운 노린내와 닭똥 썩는 냄새가 건물 안에 가득했다.’(15쪽)
첫 장부터 숨 막히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충남 금산 산란계 농장에 발을 처음 들여놓은 저자는 전북 정읍, 경기 이천, 충남 강경, 강원 횡성 등으로 옮겨다니며 닭·돼지·개들이 사육되는 현장을 찾는다. ‘고기를 위해 길러지는 동물’이 어떻게 살다 죽는지를 4년간 농장에서 일하면서 체험했다.
너무 생생해서 차라리 소설 같은 이야기의 흡입력이 강력하다. 가로 50㎝, 높이 30㎝ 전자레인지만 한 크기의 닭 케이지는 3단으로 쌓여 있다. 그 케이지 안에 닭 네 마리가 들어간다. “농구공만 한 닭을 그 안에 넣는 것이 가능한 것은 닭은 구기고 찌그러뜨려도 터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주한 현실 속 그의 마음에 자리잡은 것은 동정이 아니라 공포였다. 저자는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 말고는 다른 태도를 취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축산업계의 현실을 담았지만 통계나 수치 자료는 없다. 적게 먹고 빨리 찌는 규칙이 농장 전체를 지배하고 이 규칙을 따르지 못하는 동물은 버려지는 일상을 있는 그대로 옮겼다. 육식을 ‘야만’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아니다. ‘채식주의자가 되자’고 외치지도 않는다. 다만 ‘맛있는 먹거리’뿐만 아니라 ‘동물의 살점’으로서 고기의 의미를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한다. (한승태 지음, 시대의창, 464쪽, 1만68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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