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의료는 무조건 '공공의 몫'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죠

입력 2018-04-30 09:01  


[사설] 盧정부 때 추진한 투자개방형 병원이 '적폐'로 몰린 사연

보건복지부의 적폐청산위원회가 ‘투자개방형 병원’을 청산 대상으로 규정하고 관련 정책 폐기를 박능후 장관에게 요구했다. 복지부 국·과장 일곱 명이 포함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가 장관에게 권고하는 형식이지만 복지부 스스로의 ‘과거정책 부정’이나 다를 바 없다. “규제프리존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서 의료 분야는 제외하라”는 요구까지 하면서 대표적인 경제활성화 법안도 무력화하려 들고 있다.

지금 부처별로 거침없는 ‘적폐청산’이 진행되고 있지만 투자개방형 병원에 대해서는 분명히 짚고 갈 게 있다. 당초 ‘영리병원’이라는 명칭을 두고 본질에서 벗어난 논쟁도 수없이 반복됐던 투자개방형 병원이 정책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5년이다. 그해 1월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교육과 의료 등 고도소비 사회가 요구하는 서비스를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역설했다. 두 달 뒤 ‘서비스산업 관계 장관회의’에서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안이 구체화됐고, 10월에는 당시 이해찬 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도 발족해 영리 의료법인 허용과 의료자본의 활성화 방안이 논의됐다. 2006년에는 병원경영지원회사(MSO) 설립허용안까지 발표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2월 이런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도 입법예고됐지만 의사들과 보건의료노조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비슷한 노력을 했지만 번번이 ‘공공의료’라는 정치적 반대를 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온 것은 우리가 잘 아는 그대로다.

복지부 적폐청산위원회가 이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 서울시 청년수당 및 성남시 청년배당에 대한 반대 정책과 묶어 마치 과거 정부의 정책적 대참사인 양 몰아세우는 것은 온당치 않다.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됐던 사업까지 ‘적폐’로 몰린 것은 우리 사회의 좌(左) 편향이 그만큼 더 심해졌다는 사실의 방증일 것이다. ‘공공의료’ 구호 아래 팽창해온 국가개입주의가 병원·의료정책에도 만연해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이번에 적폐라고 명시된 보건복지 행정의 세 가지는 ‘오류나 틀림’의 문제라기보다 ‘선택이나 서로 다름’의 문제다. ‘지금은 다 옳고 그때 것은 잘못됐다’는 식이면 지금 결정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겠는가. 복지부만이 아니다. 기관별 적폐청산 활동이 계속될수록 미래가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투자개방형 병원의 필요성 지적은 그 다음 문제가 돼버렸다.

<한국경제신문 4월20일자>


‘적폐청산위원회’가 활동 중인 곳은 보건복지부만이 아니다. 거의 대부분 정부 부처에서 비슷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복지부의 국장과 과장급 간부 공무원 7명, 같은 숫자의 외부 민간 인사 7명도 과거 스스로의 복지행정을 다시 점검하며 청산대상을 가려내는 작업을 해왔다. 이 위원회는 이전 정부의 정책 중 잘못이라며 대표적으로 세 건의 정책을 적시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은 수사와 재판까지 받은 사안인데 이것도 포함됐다. 증권가의 상당수 분석가는 과거 이들 2개 회사의 합병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그렇게 됐다.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과 비슷한 성격의 성남시 청년배당은 처음 시행 당시 효과도 없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이런 여론까지 감안해 중앙 정부로서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었다. 이들 두 가지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 두 건의 정책과 함께 ‘투자개방형 병원’ 정책도 잘못됐다는 것이 복지부 적폐청산위원회 입장이다.

투자개방형 병원은 일반 투자자들이 수익을 기대하고 투자를 하는 병원을 말한다. 요즘 관심사가 되는 의료관광객 유치 등을 위해 필요하다는 평가가 많다. 수년간의 논란 끝에 제주도에서 승인이 나 개원 직전 상황에 있는 중국계 자본의 ‘녹지국제병원’이 여기에 해당된다. 의료관광객을 늘리고, 값비싼 고급 치료를 위해 해외로 나가는 내국인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되는 고부가가치의 의료관광산업을 적폐라며 중단시키겠다는 의도였다. 복지부 적폐청산위원회는 한발 더 나아가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에 의료 분야는 제외하라고 요구하고, 이게 지켜지는지 계속 주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개방형 병원이 지금 정부와 뿌리가 같은 노무현 정부 때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이라는 점이 사설의 강조점이다. 당시 유시민 장관이 주무 장관이었고, 노 정부 말기에는 이런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 시도까지 있었다. 개념이나 정책의 각론은 다소 달랐지만 외국계 병원의 국내 유치라는 내용으로만 보면 이 정책은 그 이전인 김대중 정부 때로 연원이 올라간다.

투자개방형 병원이 ‘적폐’가 된 것은 ‘공공 의료’라는 구호가 우리 사회에서 득세했기 때문이다. ‘의료는 무조건 공공의 몫’ ‘의료는 복지의 기본’이라는 슬로건이 미래산업으로서 투자개방형 병원을 밀어냈다고 봐야 한다. 공공 의료 체계가 자리잡으면서 ‘의료 산업화’나 ‘선진 의료’가 막혀버린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에서는 공공 보건소 진료체제가 폭넓게 갖춰져 있으나 첨단 의료나 고급 병원 수요층은 미국 등 외국으로 나가버린다. 지난해 성형 등을 포함해 한국을 찾은 의료관광객은 32만 명으로 그 전 해 36만 명보다 12%가량 줄었다. 미래의 먹거리를 차단하는 이런 행위가 훗날 적폐행정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않을는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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