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없이 5년째 '빈 모자'
마지막 기회로 택한 日투어서
기나긴 슬럼프 벗고 정상 올라
"우즈와 대결 때도 안 떨렸는데
우승 생각에 가슴 오그라들어
그래도 안 무너지고 우승했죠"
[ 이관우 기자 ]
“타이거 우즈와 붙었던 2009년 PGA챔피언십 때도 안 떨렸는데, 어제는 와~무척 긴장했어요. 하하.”
‘바람의 아들’ 양용은(46)은 십년 묵은 체증을 한꺼번에 털어버린 듯 여유로워 보였다.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더크라운스를 제패한 뒤 귀국한 그를 30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양용은은 전날 끝난 대회에서 최종 합계 12언더파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위와는 4타 차. 2010년 코오롱한국오픈 이후 8년 만의 우승이자 프로 통산 12승째다. 일본 투어로 치면 2006년 산토리오픈 이후 12년 만이다.
2009년 메이저대회에서 우즈를 꺾고 거머쥔 5년짜리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드는 2014년 잃었다. 2016년에는 유러피언투어 시드까지 잃어 ‘골프 유목민’처럼 세계 각국을 떠돌았다. 후원사 없이 빈 모자 쓴 지도 벌써 5년 째. 그사이 목디스크로 4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팔굽혀펴기를 한 개도 못했던 때”였다는 게 그의 기억이다. 그래도 머릿속엔 ‘딱 한 번 우승하고 클럽을 놓자’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악순환의 고리가 됐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마음을 비우고 ‘마지막 기회’로 택한 곳이 일본 투어다. 작년 조카뻘 후배들과 섞여 퀄리파잉테스트를 봐 수석을 차지했다. 올 시즌 첫 대회는 커트 탈락. 실망스러운 결과지만 ‘안 되려면 그럴 수 있다’며 웃어넘겼다. 그리고 출전한 두 번째 대회. 마음을 비웠다고는 했는데, 막상 기회가 오자 불안감부터 밀려왔다.
“이게 얼마 만에 잡은 (우승) 기회냐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가슴이 오그라들더라고요. 그러면 무너져야 하는데 우승했잖아요. 골프가 참 묘한 것 같습니다.”
되려고 하면 안 들어갈 것 같은 퍼팅도 들어가는 게 골프라고 그는 말했다. “3타 차로 쫓기던 마지막 18번홀에서 내리막 퍼팅을 치는데 ‘딱’ 소리를 내면서 홈런을 쳐 버린 거예요. 야! 이거 그린 오비 나겠다 싶었는데, 그게 홀컵 뒷벽을 맞고 버디가 되더라고요.”
연장까지 갈 수 있었던 실수가 완벽한 4타 차 우승으로 귀결된 배경이다.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했지만, 준비는 탄탄했다. 훈련과 연습을 극도로 단순화했다. 하루 두 시간 안팎의 기본 체력훈련(스쿼트, 역기 들기, 달리기 등) 외엔 나머지 시간을 주 3~4라운드의 실전훈련에 할애했다. 복잡한 첨단훈련법이나 근육훈련 같은 하드 트레이닝을 과감히 버렸다. “우승에서 오랫동안 멀어지면서 훈련량이나 기술보다는 결국 마음이라는 결론을 얻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컸던 스윙도 간결하게 바꿨다. 귀 높이까지 올리던 백스윙을 어깨 높이로 10㎝ 이상 줄였다. 정확성은 높아졌는데 비거리는 줄지 않았다. 요즘 그는 290~300야드를 친다. 그는 “일본 투어에서 같이 뛰는 후배 강경남이나 김형성보다 더 멀리 나가더라”고 자랑했다.
올해부터 캐디를 봐주고 있는 여자친구의 응원도 힘이 됐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캐디용 전동카트를 선물했다”며 “함께 우승을 합작한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딱 1승만 더’였던 목표는 지금 ‘시즌 2승’으로 늘었다. 이르면 오는 7월께부터 미국 무대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물론 시드가 없으니 예선전을 치러야 한다. 자신감은 넉넉하다. 2009년 우즈를 제압했을 때에 견줘 샷감이 90%는 돌아온 듯하다고 그는 말했다.
“버티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골프 모르잖아요. 미국에 다시 가면 우즈랑 술도 한잔하고 또 한 번 맞붙어 봐야죠. 그전에 우승 한 번 더 하고요.하하”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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