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의 시사토크] 주식 의결권의 불균형 문제

입력 2018-05-02 17:43  

문희수 경제교육연구소장


법무부가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담은 상법개정안 검토의견을 국회에 제출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2013년 법무부가 비판 여론에 백지화했던 그 상법개정안과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및 대주주 의결권 3%로 제한 등이 그렇다. 이번에는 법무부가 국회에 계류돼 있는 13개 상법개정안에 대해 민관 전문가들로 구성된 상법특별위원회 이름으로 검토의견을 냈다고 하지만 다른 게 없다. 5년 전에 폐기됐던 사안을 기어이 다시 꺼내 든 의도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벌써 조짐이 심상치 않다. 당장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반기를 들고 무리한 요구를 하며 공격할 태세다. 호시탐탐 국내 기업 경영권을 노리는 투기자본들이 자기들 세상이 열린 양 활개를 친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은 상법 개정에 미리 대비한다며 서둘러 의결권 행사지침을 고쳐 집중투표제에 찬성할 수 있는 근거를 신설했다. 피아 식별이 안 된다.

주주평등원칙은 '비례적 평등'

이런 상법개정안은 법리적으로도 문제다. 현행 상법(제369조)은 1주 1의결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주식회사의 근간이다. 주식 수가 많으면 의결권도 많아진다. 그런데 상법개정안은 집중투표제를 통해 1주당 다수 의결권을 부여하면서 대주주 의결권은 임의로 3%로 제한하고 있다. 이미 감사를 선임할 때 이같이 제한하고 있지만, 사실 법리적 근거가 없다. 2013년 당시에도 국회입법처조차 아주 특수한 경우에나 소용될 사항을 일반화해 법률에서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왜 하필 3%인지에 대해서도 실증적인 조사 연구나 합리적인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던 그대로다. 상법상의 주주평등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주주평등원칙이란 주주가 그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 평등한 권리를 갖는 것이다. 즉 주주의 평등이란 권리가 소유 주식 수에 비례하는 비례적 평등이다.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강행규정 역시 국제룰에 맞지 않는다. 미국은 대부분 주가 회사 정관에 근거가 있는 경우에만 집중투표제를 허용한다. 의무화한 주는 몇 곳에 불과하다. 일본 역시 주주 간 분쟁 등으로 1974년부터는 회사 정관에서 허용할 때만 시행토록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강행 규정을 채택한 나라는 극소수다.

다중소송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출자비율이 높은 모자회사라도 엄연히 다른 회사인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회사법의 근간인 법인격을 부정, 훼손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창에 맞설 방패도 있어야

더구나 집중투표제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을 투기자본의 공격에 노출시킨다. 이미 선례도 있다. 집중투표제 같은 것은 현행대로 기업에 시행 여부를 맡기는 게 옳다. 기어이 강행한다면 기업에도 똑같이 1주당 다수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 황금주 같은 방어장치를 허용해야 형평에 맞는다. 창은 되지만 방패는 안 된다는 것은 룰도 아니다.

주식 의결권의 불균형이다. 대다수 선의의 소액주주와 화려한 명분 뒤에 숨어 있는 특정 세력 및 투기자본을 구분이나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규칙을 만들려고만 할 뿐 고민이 너무 없다. 대주주의 사익 추구를 막겠다면 다른 데서 방지 장치를 만들면 된다. 기업소득환류세 등 이미 장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규칙을 남발하면 규칙을 못 만들게 해야 하나. 아무리 코드, 코드 하지만 온전한 기업이 정권보다 오래가는 나라여야 젊은 세대에게 미래가 있다.

m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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