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위기' 관리 나선 트럼프
북과 비핵화 협상 의미있는 진전
이란엔 "핵협정 파기할 것" 엄포
북은 중국… 이란은 러와 동맹
美 공격적 전략, 中·러와 대립 소지
중엔 무역이슈와 한반도 문제 연동
러엔 이란핵 협조땐 제재완화 신호
북한과 협상 기회 최대한 이용
중동에서 압박 강도 극대화 할 듯
[ 주용석 기자 ]
1950년에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끔찍한 휴전 상태가 해빙 국면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남북한은 전쟁 상태(휴전)를 종식시키겠다고 다짐했다.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은 핵 프로그램을 차례차례 양보하고 있고, 그러는 동안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동시에 중동지역의 동맹국과 함께 이란을 옥죄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중동 출장을 떠났다. 폼페이오가 아랍·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만나 반(反)이란 성명을 조율하는 동안 시리아 주둔 이란 기지에 (이스라엘 소행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공격이 이뤄졌다.
(한반도와 중동에서의) 이 같은 사태 진전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트럼프 외교안보팀은 지금까지 두 가지 위기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첫째,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다. 이는 동북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위협하고 있다. 김정은이 도쿄를 파괴한다면 미국은 과연 미 본토를 위협에 빠뜨릴 각오를 하면서까지 북한에 보복 공격을 가할까.
둘째,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대(對)이란 온건정책으로 중동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시리아와 이라크 전역에서 종파 간 전쟁과 이슬람 지하디스트의 폭력이 발생하고 있지만 미국의 오랜 우방국들은 (이라크나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일보다) 이란의 제국적 야망을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다.
두 가지 도전 중 어느 것 하나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다는 게 백악관의 딜레마다. 아시아 양쪽 끝에서 벌어지는, 이 두 가지 폭발력을 가진 위기를 관리하려면 미국은 정치적·군사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사태를 더 복잡하게 하는 건 북한이 중국의 고객이고 이란은 러시아의 동맹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공격적인 정책을 펴면 중국과 러시아 모두에 대립 관계에 빠질 수 있다.
두 가지 위기 중 어느 하나를 뒤로 미뤄둘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질문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치러야 할 독특한 전쟁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에 협력할 의지가 있는지 묻고 있다. 중국과는 무역 협상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연동시켰다. 비록 북한에 대해 군사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줘 긴장을 고조시켰지만 말이다.
러시아와는 일관되게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했다. 이란 문제에 협조하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트럼프는 처음엔 러시아가 미국에 협조적으로 나오리라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여전히 이란에 착 달라붙어 있다. 반대로 중국은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김정은의 팔을 비틀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떠오르는 중국이 쇠락하는 러시아보다 미국에 위협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러시아보다는 중국이 미국과 협력하려는 동기가 더 강하다.
우선 중국은 미국과 무역관계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 무역전쟁은 미국과 중국 모두에 해를 끼칠 수 있지만 특히 중국에 더 해롭다. 중국은 미국보다 가난하고 중국의 금융 시스템은 (위험에) 더 취약하다. 중국은 미국보다 더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중국은 북한이 동아시아에서 핵 균형을 뒤흔드는 걸 원하지 않는다. 만약 미국의 핵우산에 의구심이 제기되기 시작하면 일본은 스스로 핵무장에 나설 것이다. 대만과 한국도 곧 따를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완충지대로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주변에 핵을 가진 적대국이 포진하는 건 원치 않는다. (그런 점에서) 김정은을 억제하는 건 미국과 중국 모두에 도움이 된다.
중국과 미국은 중동에서도 얼마간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 두 나라 모두 저유가와 지정학적 안정을 원한다. 중동지역의 불안으로 에너지 가격이 올라가면 중국은 지는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기게 된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위태로운 러시아 경기는 살아날 것이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대외적인 야심이 실현될 가능성도 커진다. 중국 지도자들이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마다 미국은 좋은 날이 이어질 것이고, 러시아는 나쁜 날이 될 것이다.
김정은의 양보가 한반도에서 핵 갈등의 종식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중국은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동북아 정세가 불안정해는 걸 막는 데는 관심이 있지만 북한을 압박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는 건 훨씬 힘든 일이다.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이 동결되기만 해도 미국에는 숨 쉴 여유가 생긴다. 미국이 중동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 말이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볼 때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다. 백악관은 김정은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계속 준비함으로써 (북한 제재 과정에서 보여준) 중국의 도움에 사의를 표시하는 한편 베이징, 평양과의 안보·무역 협상에 대비하고 있다.
그 결과 중동에서 미국은 압박의 강도를 훨씬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모스크바와 테헤란은 (트럼프가 쓴) 《거래의 기술》을 잘 연구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원제=A Crisis on Each End of Asia
정리=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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