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화려… 가시밭길 10년
창업자 명성·기술력 인정받았지만
10년 넘게 적자… VC투자 못받아
경영 악화에 우회상장도 실패
재무구조 개선·투자 유치
'두루넷 창업자' 김종문 씨 영입
매출 증가 … 2014년 흑자전환
LB인베스트서 200억 '수혈'
투자 후 기업가치 45배 급증
다른 VC서 추가로 470억 마련
해외에 기술 수출·특허 등록
올해 코스닥 이전 상장 추진
[ 이동훈 기자 ] ▶마켓인사이트 5월3일 오후 2시41분
바이오 기업 툴젠의 시작은 화려했다. 유전자 교정 분야 권위자인 김진수 박사가 ‘유전자가위’ 기술을 바탕으로 1999년 툴젠을 창업하자 국내 벤처투자업계가 들썩였다. 2000년 한국기술투자가 32억원, 2001년 한국바이오투자가 10억원을 투자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소와 삼성생명과학연구소를 거친 김 박사의 명성에다 유전자가위 기술의 가치를 인정받아서다.
툴젠은 2006년 1세대 유전자가위 ‘징크핑거’, 2011년 2세대 유전자가위 ‘탈렌’을 잇따라 내놓으며 기술력도 입증했다. 하지만 2001년 이후 2014년까지 단 한 푼의 외부 투자도 받지 못하면서 자금이 말라붙었다. 10년 넘게 적자가 지속된 데다 2011년까지 연매출이 1억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유전자가위 기술에는 정통했지만 회사 경영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렇게 사장될 뻔한 툴젠의 유전자가위 기술은 2014년 국내 벤처캐피털(VC) LB인베스트먼트를 만나면서 기사회생했다.
화려한 시작에 이은 10년의 암흑기
유전자가위는 생명체의 유전자 중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부분을 잘라 제거하거나 재배열하는 생명공학 기술이다. 혈우병, 황반변성, 유전성 실명 같은 희귀 유전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식물 육종 개발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이처럼 성장성이 큰 기술을 품고 있었지만 툴젠의 경영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대학 연구소 수준의 부실한 회사 경영에 VC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2006년 추진한 우회상장이 실패하면서 시장 신뢰마저 떨어졌다. 김 박사가 2005년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부임하며 국가에서 나오는 연구지원비를 받았지만 회사를 운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 사이 유전자가위 기술은 3세대 ‘크리스퍼’로 넘어가고 있었다. ‘생명공학의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던 기술이다. 1, 2세대에 비해 DNA를 절단할 때 발생하는 오류가 비약적으로 줄었을 뿐 아니라 비용도 5000달러에서 30달러로 낮아지며 상품 가치도 뛰었다. 경쟁자인 MIT-하버드대의 브로드연구소, UC버클리 등은 기술 이전, 특허 등록, 신약 개발 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툴젠은 기술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영원히 도태되지 않으려면 변화가 필요했다.
르네상스 시대 연 경영자와 VC들
크리스퍼 기술 개발이 한창이던 2011년 말 창업자인 김 박사는 김종문 전 두루넷 공동 창업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툴젠의 대표 자리를 제안한 것. 김 대표는 국내의 대표적인 정보기술(IT) 전문가다. 1996년 초고속인터넷 두루넷을 공동 창업한 뒤 1999년 미 나스닥 상장을 이끌며 경영 능력도 인정받았다. 그는 흔쾌히 툴젠 대표 자리를 받아들였다. 김 대표는 “당시 유전자가위라는 글로벌 원천기술을 가진 툴젠을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회사로 키워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툴젠에 합류한 김 대표는 바로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다. 시약 판매 등 매출을 높이고 비용을 통제해 수익성을 개선했다. 2011년 1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2012년 6억원, 2013년 10억원에 이어 2014년에는 15억원까지 불었다. 2014년에는 1억5000만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흑자 전환했다. 하지만 VC들은 김 대표를 문전박대했다. 초기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는 낙인이 계속해서 툴젠을 따라다녔다.
“위기의 순간 박중건 LB인베스트먼트 상무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김 대표는 회상했다. 생물학도 출신인 박 상무는 유전자가위 기술의 성장 가능성을 단박에 알아봤다. 그는 “혈우병 등 유전병의 완치 가능성을 높일 뿐 아니라 병충해를 유발하는 식물의 DNA를 잘라내 병충해에 걸리지 않는 종자를 얻어내는 등 유전자가위 기술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투자 후 45배 껑충 뛴 기업 가치
LB인베스트먼트는 2014년 10월 툴젠에 30억원(보통주 10억원, 전환사채 20억원)을 투자했다. 2016년에는 KTB네트워크 인터베스트 타임폴리오자산운용 등 다른 VC들까지 끌어모아 총 100억원의 자금을 댔다. LB인베스트먼트 투자를 기점으로 툴젠은 470억원의 신규 자금을 수혈받는 데 성공했다.
툴젠은 이 자금으로 기술 개발, 기술 이전, 특허 등록, 기술 상용화 등에 박차를 가하며 기업 가치를 높이고 있다. 2016년 한국과 호주에서 크리스퍼 관련 특허 등록을 마쳤다. 유전자가위의 정밀도와 안정성을 높여주는 ‘스나이퍼카스나인’ ‘씨제이카스나인’ 등 보조기술도 개발했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농업 바이오기업 몬산토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수출하는 계약을 맺기도 했다. 농우바이오 등 국내 농업 기업들과 종자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바이오앱이라는 업체와는 구제역 등 동물 전염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툴젠치료제, 툴젠종자회사, 툴젠동식물치료제, 툴젠진단기 등으로 계열사를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툴젠은 올해 코스닥시장으로 이전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코넥스 대장주’로 시가총액이 9000억원에 달한다. LB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할 당시 기업 가치 200억원에 비해 45배나 뛰었다. LB인베스트먼트는 창업자인 김 박사에 이어 툴젠 지분 13.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투자 이후 단 한 주도 팔지 않고 있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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