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 원화 강세, 시장금리 상승이 한국 경제의 주요 변수로 등장했다. 수출 호조 덕분에 1년 넘게 순항하던 국내 경제가 ‘트리플 악재’를 만나 주춤거릴 조짐이다.
좀체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내수의 악재인 ‘밥상 물가’, 남북 관계 해빙 무드를 타고 절상 압력을 받고 있는 원화 가치, 사상 최대인 가계 빚 부담을 키우는 급등한 시중금리 등 ‘신(新) 3고(高)’ 탓에 가까스로 회복한 경제성장률이 또다시 고꾸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개월 만에 최고치인 1.6%(전년 동기 대비)를 나타냈다. 지난해 10월(1.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경기를 주도했던 수출이 흔들리면서 생산투자가 감소하는 가운데 물가마저 불안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올 들어 1.0~1.4%대에 머물며 주춤해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부터 뚜렷한 오름세 띠기 시작했다. 올해 급격하게 인상된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은 외식물가는 물론 채소 어류 과일 등 ‘밥상 물가’가 유난히 뛰었다. 감자(76.9%), 무(41.9%), 고춧가루(43.1%) 등이 대표적이다. 최저임금 영향이 큰 외식비는 2.7% 오르며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구내식당 식사비(3.7%)를 비롯해 김밥(4.9%), 갈비탕(6.3%) 등 일반 가계나 소비자들이 실제 피부로 체감하는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먹거리 물가는 서민가계와 소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물가가 치솟는 만큼 가계의 실질구매력 감소로 이어져 가뜩이나 부진한 내수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프랜차이즈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올린 데 이어 배달료까지 추가로 받고 있어 당분간 체감 물가 상승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원화 강세 흐름도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는 큰 부담이다. 올 들어 호재와 악재가 번갈아 나타나면서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기조적으로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은 하락)을 점치는 전문가가 많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가속화라는 변수에도 불구하고 ‘판문점 선언’ 등 모처럼 불어온 남북 관계 훈풍이 원화 가치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남북한 정상회담에 이어 5월 중 열릴 북·미 정상회담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게 완화된 데다 아직 진행 중인 한국과 미국 간 외환시장 공개 방식을 둘러싼 환율 협의 이슈까지 맞물리면서 올 상반기까지 원·달러 환율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9월 만 해도 달러당 1145원대에서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은 현재 1070원대 안팎으로 주저앉았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달러당 1050원대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미국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고 있고, Fed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원화 가치는 계속 오를 것”이라며 “원화 강세는 국내 수출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져 자동차, 석유화학, 정유업계 부진한 실적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빠르게 오르고 있는 시장금리도 변수다. 주요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거둬들이며 통화정책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만 해도 올해 3~4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6년5개월 만에 금리를 올린 한국은행도 추가 금리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장금리도 빠른 오름세다. 지난해 9월 연 1.8%대에서 오르내리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올 들어 계속 오름세를 띠더니 어느새 연 2%대 초중반까지 뛰었다. 금리가 오르면 1450조원을 넘어선 가계 빚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민간소비로 흘러 들어가야 할 돈이 금융회사 빚을 갚는 데 사용돼 내수가 위축될 우려가 크다. 수출이 불안한 상태에서 내수까지 한꺼번에 위축되면 일자리와 소비, 투자가 동시에 움츠러드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구정모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는 “신 3고가 한국 경제의 복병으로 떠올랐지만 마땅한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 정교한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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