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지는 원리 첫 규명

입력 2018-05-04 14:41   수정 2018-05-04 14:51


한국의 과학자들이 꽃잎이 지는 원리를 처음으로 알아냈다.

곽준명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교수(전 기초과학연구원 식물노화·수명연구단 그룹리더)와 이유리 기초과학연구원(IBS) 식물노화·수명연구단 연구위원 연구팀은 꽃잎과 나뭇잎이 몸체에서 분리되는 위치에서 ‘리그닌’이란 물질이 잎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국제학술지 셀이 4일자에 소개했다.

식물은 번식을 위해 싹을 틔워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앗을 퍼뜨리고 낙엽이 지게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꽃잎이나 나뭇잎이 지는 모습은 수많은 문학과 예술작품의 소재가 될 정도로 관조의 대상이었지만 정확히 언제 어떤 부분에서 분리되는 지 알려진 바가 없다. 식물 세포의 경우 동물 세포와 달리 물리적으로 견고한 세포벽을 갖고 있어 어떻게 성장과 발달을 반복할 수 있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실험용 식물인 애기장대를 이용해 나뭇잎이나 과실, 꽃잎, 씨앗이 떨어지는 ‘탈리 현상’이 일어나는 경계에 이웃한 두 세포 중 떨어지는 쪽에 있는 이탈세포에만 리그닌이 형성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리그닌은 셀룰로오스 다음으로 목재 중량을 차지하는 물질로, 식물 줄기 내부의 단단한 부분인 목질을 구성하는 고분자 화합물이다. 연구진은 리그닌이 꽃잎을 정확한 위치에서 떨어지게 하는 울타리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리그닌은 이웃한 두 세포 사이를 분리시키는 분해 효소가 꽃잎이 떨어지는 경계선 위치에 집중되도록 하고 주변 세포로는 퍼지지 않게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탈세포에는 활성산소 중에서 과산화수소가 많이 축적되는 반면 식물 본체에 남는 잔존세포에는 수퍼옥사이드 이온이 많이 축적되는데 이런 독특한 활성산소의 분배가 각각 세포가 역할을 수행하는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이탈세포에서는 세포 사이를 떨어뜨리기 위해 세포벽 분리 효소가 세포 밖으로 분비되지만 잔존세포에서는 세포벽이 분리되지 않도록 세포 안에 머문다. 잎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잔존세포는 표피 세포로 바뀌고 큐티클 층을 만들어 새롭게 노출된 부위를 외부 세균 침입으로부터 보호한다. 표피세포는 식물의 배아 발생 때 결정돼 전 생애 동안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탈리 과정 동안 잔존세포가 표피세포로 분화되는 것을 처음 확인했다. 리그닌의 육각형 벌집구조가 그런 기능을 하는데 가장 알맞다는 사실도 새로 드러났다. 이런 울타리 역할 덕분에 꽃잎이나 과일이 떨어져야 할 정확한 자리에서 분리된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리그닌이 없다면 세포벽 효소들이 탈리가 일어나야 할 곳이 아닌 위치에 퍼지면서 이탈세포와 잔존세포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부정확한 위치에서 잎이 지면 잔존세포의 보호막인 큐티클 층이 형성되지 않아 외부 세균 공격에 취약해지고 생존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로 식물의 탈리 현상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화합물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보고 있다. 열매가 잘 안 떨어져 수확이 어려운 품종인 고추의 경우에는 탈리 현상을 촉진해 수확을 용이하게 하고, 과일의 경우에는 탈리 현상을 억제해 낙과를 줄여 생산량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곽준명 교수는 “이탈세포에서 형성된 리그닌이 더는 필요하지 않는 조직을 정확히 떨어뜨려 식물 성장에 기여하고 떨어지는 경계에서 두 이웃 세포가 서로 협력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아냈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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