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인구 감소 더해 경제에 치명타
규제완화·소득증대 근본 대책 절실"
윤계섭 < 서울대 명예교수·경영학 >
“제발 돌아와 주오.” 2015년 5월 프랑스 대표 일간지 르몽드에 독자들을 비탄에 빠뜨린 기고문이 실렸다. 간판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고급 두뇌의 귀국을 읍소하는 내용이었다. 혁신 경제를 주도할 엘리트의 이민으로 인재난이 심각해지자 나온 고육책이었다. 프랑스 혁신 경제의 비극은 프랑스를 옥죄던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 즉 인재 이탈 현상을 반영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2000년 5.80이던 프랑스의 인재유출지수(BDI: 0에 가까울수록 해외에서 일하는 인재가 많다는 뜻)는 2015년에 4.57로 악화됐다. 부르고뉴대 설문 조사에 따르면 2003~2008년 학위 취득 후 외국에서 직장을 찾은 박사 유학생 비율은 57%에 달했다. 1990년대에 비해 50%나 늘었다. 싱크탱크인 몽테뉴연구소는 프랑스를 떠나는 이민자 10명 가운데 3명은 고급 인력이라는 통계를 내놨다. 25년 전보다 세 배 이상 높은 수치였다.
프랑스 정부는 다양한 인재 이탈 방지 대책을 내놨다.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은 해외 동포 사회를 찾아 조국으로 돌아와 달라고 호소했다. 국가연구청(ANR)을 발족하고 고액의 연구 지원금과 자유로운 연구 환경을 제공했다. 창업 환경을 정비했다. 창업 펀드를 출범시키는 한편 프렌치 테크(Le French Tech)라 불리는 스타트업 육성 생태계를 조성했다. 효과는 미미했다. 구조적 해결책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정치 리더들은 고급 인력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 개혁에 실패했다. 규제 혁파를 게을리했다. 2000년 75개국 중 60위였던 프랑스의 세계경제포럼(WEF) 규제부담률 순위는 2015년에도 140개국 중 115위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0년 43.1%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2015년 45.2%로 올랐다. 인재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고 더 많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나라를 찾아 프랑스를 떠나게 만들었다.
고급 두뇌 이탈 현상은 우리나라도 심각하다. 2000년 5.43이었던 BDI는 2015년에 3.98로 떨어졌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외국행을 택한 박사학위자 수는 2003년 대비 66% 늘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한국 박사 유학생 10명 중 6명은 학위 취득 후 귀국을 미뤘다. 한국 유학생 중 미국 취업자 비율은 1990년대에 비해 두 배 늘어났다.
정부가 손 놓고 있던 것만은 아니다. 기초과학연구원과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를 통해 해외 학자를 초빙했다. 연구관리 전문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을 창설했다. 원천기술개발사업 등 다수의 국책연구사업을 전개해서 우수 연구자들에게 대규모 지원을 했다. 대학 기술지주회사 설립을 장려했을 뿐 아니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워 신생 기업 육성에도 나섰다. 그러나 대증요법의 파급력은 제한적이었다. 프랑스가 그랬듯이 근본적 대책 마련을 경시했기 때문이었다.
정책 당국은 A급 두뇌들의 높은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개혁을 단행하지 못했다. 혁신 기업 활동에 필수적인 파격적인 규제 완화는 구호에 그쳤다. 2000년 75개국 중 50위였던 WEF 규제부담률 순위는 2015년에도 140개국 가운데 97위에 머물렀다. 선진국 대비 소득 창출 기회는 크게 늘어나지 않은 반면에 세금 부담은 늘었다. OECD가 집계한 조세부담률은 2000년 21.46%에서 2015년 25.16%로 뛰었다. 브레인 드레인을 자초했다.
더 이상은 곤란하다. 고급 인력난은 생산인구 감소 현상과 맞물려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날릴 것이다. 혁신의 주역들이 탈(脫)한국을 이어가는 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경제 혁신은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가 인재 유출에 대한 획기적 처방전을 내놓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판 혁신 경제의 비극을 막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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