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더스, 점포·매출 급증
롯데마트 서초점도 상품 줄여
'선택장애' 겪는 소비자 겨냥
소비자·기업 '윈-윈'
[ 안재광 기자 ]
‘롯데마트 5만 개, 코스트코 3000개.’
서울 양평동에서 영업 중인 두 대형 유통매장의 상품 숫자다. 롯데마트가 10배 이상 많은 종류의 상품을 판다. 하지만 매출은 반대다. 코스트코 양평점의 연 매출은 2500억원 안팎으로 롯데마트 양평점의 3배나 된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상품을 잘 골라 저렴하게 판매한 효과다.
◆이마트는 줄이고 트레이더스 늘려
유통업계에 ‘상품 수 줄이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너무 많은 상품 탓에 ‘선택 장애’를 겪는 소비자가 늘어난 영향이다.
이마트의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가 대표적이다. 이마트는 작년부터 본격적인 매장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트레이더스 매장은 계속 늘리고 있다. 2010년 1호점 구성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4개나 열었다. 이마트 매출은 정체된 반면 트레이더스 매출은 급증하고 있어서다. 트레이더스의 작년 매출은 1조5210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27% 증가했다. 올해는 2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트레이더스는 코스트코와 영업 방식이 비슷하다. 상품 수가 이마트의 10분의 1 수준인 5000여 개다. 시즌별로 상품을 계속 바꾸고, 안 팔리는 상품은 바로 없앤다. 트레이더스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는 상품군별로 2~3개 정도”라며 “모든 브랜드의 상품을 다 진열하는 방식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롯데마트가 지난달 문을 연 ‘마켓D’도 상품 수를 줄였다. 마트에서 인기 있는 미국산 소고기, 러시아산 킹크랩 등 1000여 개 상품을 상품기획자(MD)들이 엄선했다. 롯데마트는 기존 점포에서도 상품을 덜어내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프리미엄 마트인 서초점은 인기 없는 상품은 과감히 없애고, 많이 팔리는 상품 위주로 진열대를 바꿨다. 기존에 20~30개 브랜드가 있던 라면 매대에 10개 안팎 브랜드만 남기는 식이다. 남아 있는 브랜드 상품 진열은 다른 매장보다 2~3배 넓혔다.
1억 개 이상의 상품을 판매하는 e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도 바뀌고 있다. 이 시장 국내 1위 이베이코리아는 2013년 ‘G9’란 채널을 열고 판매자를 약 2만 명으로 제한했다. 10만~20만 명에 이르는 G마켓, 옥션 등의 10분의 1 수준이다. 상품 숫자도 약 300만 개로 훨씬 적다. 그런데도 거래액이 올해 1조원을 바라볼 정도로 성장했다.
11번가는 메인 화면에 노출되는 상품 숫자를 200개 안팎으로 제한하고 있다. 기존 PC에서 구입하던 사람들이 모바일로 이동하면서,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맞춘 것이다. 순서 없이 무작위로 상품을 보여주던 방식에서 소비자가 과거 구매한 상품군 위주로만 배치했다.
◆큐레이션 역할까지 요구
유통업계가 상품 숫자 줄이기에 나선 것은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 이익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최근 유통기업에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선별까지 해주는 ‘큐레이션’ 역할도 요구한다. TV 홈쇼핑에서 특정 쇼호스트 프로그램에 반복 구매가 이뤄지는 게 대표적 사례다. 홈쇼핑 관계자는 “연 수천억원씩 물건을 판매하는 스타 쇼호스트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고정 구매층이 있다”며 “이들은 쇼호스트가 추천하는 물건을 믿을 만하다는 이유로 계속 산다”고 말했다. TV 홈쇼핑의 쇼호스트 역할을 대형마트, e커머스 업계에서도 시도하고 있다.
유통업체들도 소비자가 선호하는 상품에만 집중하는 게 수익에 도움이 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소수의 상품을 대량으로 판매해야 비용을 줄이고 단가를 낮출 수 있다. 판매 상위 20% 상품이 매출의 80%를 올려주는 ‘파레토의 법칙’이 유통업계에 잘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위 20% 상품을 골라내는 기업들의 ‘실력’이 중요하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상품 수를 줄이면 매출이 감소할 여지가 있어 자신감이 없으면 시도하기 쉽지 않았다”며 “요즘은 빅데이터 분석으로 소비 패턴을 분석할 수 있어 상품 수를 줄이는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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