强달러 이어지자 글로벌 자금 요동
美 감세·인프라 투자 '효과'
금리인상 가속 예고하는데
유럽은 경기 회복 늦어져
신흥국 한달새 55억弗 유출
아르헨·터키·우크라이나 등
통화가치 급락으로 초비상
[ 뉴욕=김현석 기자 ] 미국 달러화 강세가 3주 넘게 이어지면서 신흥시장에서 자금 유출이 본격화하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외국인은 한국 증시에서도 ‘팔자’ 우위를 보이고 있다.
달러화 강세는 대규모 감세와 인프라 투자 확대를 앞세운 미국 경제가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계속 내보내는 것도 미 국채에 대한 투자 수요를 늘리면서 달러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시장에서 6월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최근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4년 만에 연 3%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예상에 못 미치는 유럽 경기도 달러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달러 강세 이어질 것”
7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ICE 달러인덱스는 0.21% 상승해 92.76으로 마감됐다. 장중 92.974까지 올라 작년 12월 이후 최고로 올랐다. 달러인덱스는 유로와 엔, 파운드 등 6개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 가치를 나타낸다.
달러화는 작년부터 지난 4월까지 약세를 보였다. 미국 재정적자로 국채 발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 데다 올해 유로존의 경기 회복세가 미국을 앞설 것으로 전망돼서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께부터 달러가 강세로 돌아섰다. 유로존 경기 흐름이 둔화된 영향이 컸다. 유럽의 경기서프라이즈지수(ESI)가 연초부터 나빠진 가운데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5%로 예상을 밑돌았다.
반면 미국 경제는 실업률이 17년 만에 최저인 3.9%로 떨어지는 등 호조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미국과 다른 주요 국가 간 물가에서도 차별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달러 강세와 금리 상승을 부르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석유 결제수단으로 쓰이는 달러 수요도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얼마 전까지 달러 약세를 예상했던 헤지펀드도 의견을 바꾸고 있다. 미국 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레버리지 펀드의 달러 약세 포지션 규모는 지난주 15주 만의 최저로 낮아졌다.
◆신흥국 자금 유출 가속화
미 금리 상승에 달러화 강세까지 나타나면서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신흥시장에서는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달러 강세가 본격화된 지난 4월16일 이후로 신흥시장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됐던 자금 가운데 해외로 유출된 돈이 55억달러에 달했다. 이 때문에 4월 신흥시장에 대한 역외자금 투자액은 2억달러 순유출로 돌아섰다.
자금이 빠져나가자 신흥국 주식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스 MSCI 신흥시장 상장지수펀드(EEM)는 지난달엔 3% 떨어졌고 지난주에도 2% 하락했다. 체드 모간랜더 워싱턴크로싱어드바이즈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달러화 가치가 3주 연속 상승하는 동안 신흥국 증시는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경제가 취약한 아르헨티나, 터키, 우크라이나 등은 통화가치 하락으로 비상이 걸렸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페소화가 폭락하자 정책금리를 연 40%까지 올렸다. 터키 중앙은행도 지난달 말 정책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환율 관리 상한선을 낮춰 은행들이 달러, 유로화 등을 리라화로 더 많이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중국도 외화보유액이 4월 말 3조1250억달러로 한 달 만에 179억6800만달러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증시에 투자한 외국인도 지난달 말 남북한 정상회담 전후로 며칠 순매수했지만 최근엔 다시 팔고 있다. 5월 이후 순매도액만 4000억원어치를 웃돈다. 미국이 6월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면 자금 이탈 폭이 커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일부에선 ‘6월 위기설’을 거론하지만 신흥국 위기가 얼마나 확대될지는 불확실하다. UBS자산운용은 “신흥국 경상수지와 이자율, 외화보유액 등을 감안하면 긴축 발작(미국 금리 인상이 초래하는 신흥국에서의 자금 이탈)이 있었던 2013년보다는 상황이 나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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