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방문한 지근억 비피도 대표(사진)의 서울대학교 연구실은 분주한 모습이었다. 책상마다 각종 자료가 쌓여있고, 컴퓨터 화면에는 방금 전까지 작업을 한듯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정신이 없네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서 성과가 나오니까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에 대한 구상도 계속 떠오르고 있습니다."
비피도는 유산균 기반 건강기능식품(프로바이오틱스)으로 알려진 회사다. 그러나 비피도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통해 의약품 개발을 진행 중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인 지 대표는 1999년 비피도를 창업했다. 서울대에서 식품영영학과를 나온 그는 미생물에 매료됐다. 그래서 서울대 대학원에서 식품 미생물 분야를 선택했고,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미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 대표는 "소위 말해 미생물과 사랑에 빠졌다"며 "박사 과정에서 장내 미생물이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파고들었다"고 말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비피더스균이다. 사람의 장 속에는 이로운 균과 해로운 균이 같이 존재한다. 이로운 균이 줄거나 해로운 균이 늘어나면 질환으로 연결된다는 게 최근 학계가 주목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다. 유익균인 비피더스는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 이를 보충시키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설립 이후 3년 만인 2001년 비피더스를 주요 성분으로 하는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내놨다. 그리고 또 3년 만인 2003년부터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해 지난해까지 흑자를 이어오고 있다.
생산시설 갖춘 마이크로바이옴 기업
지 대표는 "많은 마이크로바이옴 회사들이 분석에는 강점이 있지만, 직접 미생물을 배양하는 기술에는 매우 약하다"며 "비피도는 강원도 홍천에 3만5000L 규모의 배양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시작할 당시에는 유전체분석 방법이 개발되기 이전이라 직접 균을 배양해 연구해야 했는데, 이것이 비피도의 강점이 됐다는 설명이다. 다른 마이크로바이옴 회사들은 유전체분석을 통해 특정 미생물의 기능을 예측한다. 그러나 제품화를 위해 필수적인 미생물 배양기술을 갖춘 곳은 적다는 것이다.
비피도는 지난해 136억원의 매출과 3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2%라는 높은 영업이익률을 달성한 것은 비피도의 주력인 비피더스균이 산소가 있는 곳에서 배양하기 어려운 혐기성균이라 가격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는 매출 180억원과 영업이익 50억원이 목표다. 국내 사업의 성장과 함께 수출 부문의 매출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지 대표는 "중국 대만 베트남 등 중화권에서 매출이 많이 늘어나고 있고, 뉴질랜드와 터키 등 신규 진출 국가에서의 수주도 증가추세"라며 "2018년에는 할랄 인증 완료로 3분기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추가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비피도의 수출은 2015년 120만달러(약 13억원), 2016년 220만달러(24억원), 2017년 320만달러(34억원)로 증가추세다. 올 1분기 수출은 150만달러(16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달성했다.
연구 본격화, 연내 상장 목표
그동안의 연구를 바탕으로 마이크로바이옴 의약품(파마바이오틱스) 개발도 본격화한다. 비피도는 지난해부터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관절염센터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류머티즘관절염 환자와 정상인 82명의 장내 미생물을 분석한 결과, 환자들의 경우 장내 미생물이 다양하지 않았고 특히 비피더스의 숫자가 증상이 심할수록 적었다. 또 이번 연구를 통해 선별한 비피더스균을 동물에 투여했을 때 류머티즘관절염의 발병이 늦었고 증상의 심각도도 낮았다. 이번 연구의 결과는 지난달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제4회 트랜스레이팅 마이크로바이옴 콘퍼런스에서 발표됐다.
지 대표는 "학회에 참석한 많은 기업들이 연구 결과에 주목했고, 비피도가 생산시설도 갖춘 마이크로바이옴 기업이라는 데 관심을 가졌다"며 "여러 곳에서 추가 설명 초정을 받아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부 과제에서 제품화의 주체는 비피도다. 비피도는 건강한 사람에게서 분리한 신규 비피더스균을 파마바이오틱스의 후보균주로 개발할 계획이다. 내년에 전임상을 실시한 이후 2020년 임상 진입을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비피더스균을 이용한 유전자치료제 생산 및 전달 기술도 개발 중이다. 단백질의약품은 보통 대장균에 특정 단백질 생산 유전자를 넣어 원하는 단백질을 생산한다. 이를 대장균이 아닌 비피더스균에서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지 대표는 "대장균은 병원성균이기 때문에 독소를 제거하는 등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비피더스는 유익균이란 고비용의 정제 과정이 필요없다"고 설명했다.
비피도는 연내 상장이 목표다. 기술성평가를 통한 기술특례상장과 일반 상장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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