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판사파면 국민청원' 법원 전달···현직판사 "후진적인 국가 시스템" 비판

입력 2018-05-11 09:51   수정 2018-05-18 13:39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 국민 소통을 활발히 하고 국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청와대 국민청원'.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직접 답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불통이 아닌 소통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불협화음도 일어나고 있다.

청와대가 '판사 특별감사' 국민청원을 대법원에 전화로 알린 것에 대해 법조계난 사법권이 침해받을 소지가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현직 판사인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8일 법원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법관의 의사표현기구인 법관대표회의는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성명서 채택 등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김 부장판사는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 달라'는 국민청원은 국회에 전달하지 않았다며 청와대가 이중적 처신을 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청와대가 국회와 법원에 대해 이중적 처신을 하는 이유가 국회에는 정치적 파워가 있고, 법원은 정치적 파워와 무관한 조직이라는 데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월 청와대 게시판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파면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

같은 달 22일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은 이승련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 부장판사에 대한 국민 청원 내용을 전달했다.

김 부장판사는 "국회의원의 급여를 최저시급으로 책정해 달라는 청원은 27만명이 서명했지만 국회에 알리지 않았는데, 23만명이 서명한 판사 파면 청원은 굳이 그 내용을 통지했다"고 적었다. 그는 "외부로부터 사법권 침해가 이루어진다면, 행정부가 될 공산이 크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법관의 의사표현기구인 법관대표회의는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성명서 채택 등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에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청와대 통지를 받은 법원행정처도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을 청와대에 요구하라”고 강조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또한 "판사 파면 국민청원 전달에 우려를 표한다"는 공식 성명을 내놨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청와대 관계자가 대법원에 전화한 것이 사실이라면 법원의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물론 청와대가 국민청원 사실 자체만을 전달했다고 하고 직접적으로 외압을 행사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개별 사건마다 국민청원이 있다고 하여 이를 모두 법원에 전달하면 법원은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청와대를 통한 여론 전달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법원은 다른 국가기관뿐 아니라 여론으로부터도 독립하여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면서 "조금이라도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수있는 일이나 국민의 오해를 살만한 일은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된다. 사법부 독립은 엄정하게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조금이라도 훼손할 우려가 있는 일은 엄격하게 금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해당 파면요구 청원의 답변을 통해 "재판에 관여하거나, 판사에 대한 특별감사, 혹은 파면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 헌법상 권력분립원리는 사법권을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 분리된 독자적인 국가권력으로 본다. 법관이 재판 내용으로 인하여 파면이나 징계 등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있다면 외부의 영향력이나 압력에 취약하게 되어 사법권의 독립이 흔들릴 수 있다"면서도 "수권자인 국민이 재판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이 청원을 통해 반영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봐야할 것 같다. 악의적인 인신공격이 아니라면 국민의 비판은 새겨듣는 것이 사법부 뿐 아니라 행정부, 입법부 모두의 책무다. 청원을 통해 드러난 국민의 뜻은 결코 가볍지 않다. 모든 국가권력 기관들이 그 뜻을 더욱 경청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건에 대해서는 정부나 해당부처 관계자가 답변을 하기로 하면서 다소 황당한 청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늘어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별도의 심의없이 게재가 가능해 앞서 평창올림픽 당시 논란이 됐던 "김보름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라", "이승훈 선수 금메달을 박탈하라"는 실현 불가능한 청원은 물론 "택배 피자를 주문하게 해달라", "걸그룹 아이오아이 재결합 시켜달라", "워너원을 해체시키지 말아야 한다", "방탄소년단은 군면제 시키자" 등 개인적인 청원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국민청원 게시판은 정렬 시스템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낸다.

국민들이 국민 청원 게시판을 찾을 경우 이미 다수가 청원에 동의한 게시물이 별도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복적으로 추가 청원을 넣는 경우가 허다하다.


키워드를 검색창에 검색할 경우 최신 순으로 배열 되기 때문에 어떤 청원에 힘을 몰아줘야 하는지 일일이 모든 페이지를 확인하기 전 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례로 '정형식 판사 파면' 키워드를 검색할 경우 관련 청원은 무려 512건에 달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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