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하임 호셴 駐韓 이스라엘 대사 "자기 생각 말하는 '후츠파 정신'… '벤처 천국' 이스라엘의 비결"

입력 2018-05-11 18:51  

"韓젊은이들은 개방적이지만
예의 따지느라 토론 꺼리는 듯"



[ 추가영/이설 기자 ] 이스라엘 건국 70주년(5월14일)을 앞두고 지난 8일 저녁 하임 호셴 주한 이스라엘 대사(62)를 만났다. 그가 제안한 음식점은 서울 견지동 조계사 근처에 있는 사찰음식 전문점 발우공양이었다. 이스라엘 대사의 단골집으론 뜻밖이었다. 호셴 대사는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중요한 통로”라고 말했다. 최근엔 전북 부안 내소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기도 했다. 호셴 대사는 “새벽 6시에 이른 아침으로 사찰음식을 먹었다”며 “한식은 매우 건강한 음식”이라고 했다. 채식으로 식단이 짜이는 사찰음식은 육식에 까다로운 제한을 두는 유대식 식사법(코셔)을 어길 염려도 없다.

그는 음식이 나오자 “잘 먹겠습니다”라고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복분자 소스에 절인 방울토마토와 함께 방풍나물죽과 나박김치로 입가심을 하고 나자 봄나물 겉절이와 모둠버섯강정, 연근초절임, 사찰만두 등 다양한 음식이 상에 차려졌다. 호셴 대사는 실례한다면서 스마트폰으로 음식 사진부터 찍었다. 그는 “정말 아름답다”며 활짝 웃었다.

“한국 사람들 정 많아”

젓가락질도 능숙했다. 미나리겨자채를 밀전병으로 감싼 쌈을 젓가락으로 집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호셴 대사는 “일본에서 처음 생활하기 시작한 1982년부터 젓가락을 썼다”며 “식당에서 외국인이라고 포크를 줄 때가 있는데 포크로 한식을 먹는 게 어색하게 느껴져서 젓가락을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동아시아학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딴 뒤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일본 게이오기주쿠대에서 연구생으로 공부했다. 주일본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공사참사관과 공관차석, 공사를 지낸 근무 기간까지 합치면 일본에서 10년간 생활했다.

호셴 대사는 “한국과 일본 모두 유교 문화가 강하고 경제적으로 발전한 데다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것 등 공통점이 많다”며 “그래서 처음 한국에 왔을 때도 낯설지 않았다”고 했다. 호셴 대사는 2016년 8월 주한 이스라엘 대사로 부임했다. 한·일 간의 차이점에 대해서 묻자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다”며 “일본 사람들이 정이 없다는 게 아니고, 감정을 표현하는 걸 더 수줍어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권위에 눌리지 않는 이스라엘 문화”

한국과 이스라엘은 닮은 점이 많다고 했다. 5000년 이상 지속된 민족의 역사와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적에 가까운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된 교육열을 공통점으로 꼽았다. 호셴 대사는 “한국 젊은이들은 예의 바르면서도 개방적”이라며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국과 이스라엘에 모두 우수한 학생이 많다”며 “다만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테면 선생과 학생의 관계에서 차이를 찾을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호셴 대사는 “이스라엘에선 선생과 학생이 대등한 관계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다”며 “질문을 던지고 주장을 펼치는 것이 얼마든지 허용된다”고 말했다. “이것을 선생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이처럼 토론이 자유로운 개방적인 분위기가 창의성을 키우는 원천”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이스라엘의 ‘후츠파’ 정신이다. 호셴 대사는 “후츠파는 쉽게 말해,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있는 용기”라며 “위계나 권위에 눌려 망설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자유로운 문화가 (후츠파의) 토대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혁신적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도 이런 문화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글로벌 기업에 인수되는 성공 신화를 써나가고 있다. 지난해 인텔이 이스라엘의 자율주행 센서 전문기업 모빌아이를 153억달러(약 17조원)에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인수한 딥러닝(심화학습) 스타트업 알레그로도 이스라엘 기업이다.

“생각하는 방식, 탈무드서 배워”

후츠파가 생각을 말하는 방식이라면, 생각하는 방식은 탈무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호셴 대사는 “탈무드는 성경 말씀을 놓고 토론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보여준다”며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내서 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등 유교 문화권에서 조화를 중시한다면 이스라엘은 정의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며 “무엇이 옳은지,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기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선 조화를 강조하다 보니 타협을 중시하고, 격렬한 대립을 피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란 말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소 심심한 반찬들 사이에서 달콤한 소스로 묻혀 낸 바삭하고 쫄깃한 식감의 모둠버섯강정 맛이 입에 남았다. 호셴 대사는 한국과 이스라엘 간의 문화 차이를 차근차근 짚어주면서 두부구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문득, 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점점 더 모여드는지 궁금해졌다. 1948년 60만 명에 불과하던 이스라엘 인구는 1999년 열 배인 600만 명으로 늘었고 지금은 845만 명으로 불어났다. 가임여성 1명당 출산율이 3.1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7명)을 웃돌기도 하지만 이민자 유입도 꾸준하다.

주변 중동국가와 긴장 관계가 지속되는데도 인구가 늘어나는 게 신기했다. 호셴 대사는 “세계 각지에서 유대인이 모여들고, 나라를 떠나지 않고 지키며 살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모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 이민자가 향수병을 앓는다”며 “그래서 외국에서도 함께 모여 이스라엘 음식을 먹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다”고 했다. 디아스포라(나라를 떠나 타지에서 문화를 유지하며 사는 민족)의 ‘원조’ 격인 이스라엘인이 문화를 지킬 수 있었던 힘 중 하나가 ‘향수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문점 남북한 정상회담 보며 희망 느껴”

연잎밥과 된장국, 사찰김치, 봄나물, 장아찌 등이 한 상 다시 차려졌다. 호셴 대사는 2년 가까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4·27 남북한 정상회담’을 꼽았다. 그는 “한국 사람들의 행복, 희망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계하는 시각이 많다는 것도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호셴 대사는 “한국과 북한,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놓인 핵 문제는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란 핵 합의는 탄도미사일 개발을 막는 내용이 없고, 일몰기간이 끝나면 핵 개발이 다시 가능한 점 등 한계가 많다”며 “미국과 북한 간의 중요한 회담(북·미 정상회담)에선 북핵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셴 대사를 만난 다음날 새벽 2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과 맺은 핵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발표했다.)

호셴 대사는 한국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 증진을 위한 과제도 몇 가지 짚었다. 우선 2년 전 시작한 한국과 이스라엘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잘 마무리 짓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FTA를 체결하면 현재 23억달러 규모인 양국 교역이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게 개인적 소망이라고도 했다. 이스라엘을 찾은 한국 대통령은 아직 아무도 없다. 호셴 대사는 “문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하면 레드 카펫을 깔겠다”며 웃었다.

후식으로 금귤식혜, 조청과 콩가루를 얹은 무화과가 나왔다. 외교관이 된 이유를 물어봤다. 호셴 대사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외국에 살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고,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했다”며 “무엇보다 외국에서 한가족 같은 민족(이스라엘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라고 했다. 외교관이 그의 천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올해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美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오는 14일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이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한다. 하임 호셴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지난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만남에서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도 예루살렘으로 대사관을 이전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으로의 대사관 이전은 논란의 소지가 큰 사안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예루살렘으로 대사관을 옮기는 데 대해 중동 국가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친이스라엘 국가를 빼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는 나라도 드물다.

△1956년 이스라엘 출생
△히브리대 국제관계학,동아시아학 학사·석사
△1988년 주터키 이스라엘 대사관 영사
△1991년 외교부 북아메리카 영사업무 담당
△1992년 외교부 남아시아 동남아시아과 서기관
△1996년 주일본 이스라엘 대사관 공사참사관
△2001년 외교부 동북아시아과 과장
△2005년 주일본 이스라엘 대사관 공관차석·공사
△2008년 외교부 남아시아 동남아시아과 과장
△2014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 국장
△2016년 8월 주한 이스라엘 대사 부임


■ 하임 호셴 대사의 단골집 발우공양
제철 채소로 만든 '스님의 식사'… 2년 연속 미쉐린 선정

‘스님들의 식사’를 뜻하는 발우공양(鉢盂供養)은 서울 견지동 조계사 건너편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5층에 있는 사찰음식 전문점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이 유일하게 직영하는 식당으로 2017년부터 2년 연속 ‘미쉐린가이드 서울편’에서 별점 한 개(요리가 훌륭한 식당)를 받았다. 미쉐린가이드는 만점이 별점 세 개인데, 서울에서 별점을 한 개라도 받은 식당은 24곳뿐이다. 미쉐린은 “사찰에서 직접 가져오는 재래식 고추장, 된장, 간장과 신선한 유기농 재료로 만들어지는 발우공양의 요리는 뜻밖의 감칠맛을 선사한다”고 평가했다.

선식, 원식, 마음식, 희식 등 네 가지 코스 요리를 제공한다. 계절에 따라 코스를 구성하는 요리가 달라진다. 봄 메뉴(원식 기준)는 복분자 소스에 절인 방울토마토, 봄나물 겉절이, 청포묵이 먼저 나와 입맛을 돋우고, 이어 모둠버섯강정, 녹두전과 봄꽃전, 표고버섯냉면이 담백한 풍미를 전한다.

가격대는 3만원(선식)부터 9만5000원(희식)까지다. 점심은 오전 11시30분~오후 3시, 저녁은 오후 6시~9시30분이다. 매주 일요일은 쉰다. 희식을 맛보려면 예약해야 한다. 2인 이상, 최소 하루 전 예약, 50% 선금이 조건이다. 나머지는 예약 없이 와서 주문해도 된다.

추가영/이설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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