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시험만능사회… 안주하는 '간판 시스템' 바꿔야"

입력 2018-05-13 18:06   수정 2018-05-14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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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출간한 장강명 씨


[ 심성미 기자 ]
소설가 장강명이 ‘대세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된 과정은 독특하다. 장강명이라는 존재가 뜨기 전, 문단에는 ‘한 번 문학상을 받으면 재공모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는 금기를 깼다. 2011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이후 ‘작가로서의 타개책’을 찾기 위해 수림문학상, 제주4·3평화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 등에 응모해 차례로 수상했다. ‘문학상 4관왕’ 타이틀을 얻자 문단에서는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는 이제 문학상 지망생이 아니라 심사위원 자리에 있다.

문학상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장 작가가 문학 공모전 시스템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르포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을 냈다. 13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본사에서 만난 장 작가는 “20대 때부터 소설가의 꿈을 꾸며 ‘한국에서 작가가 되려면 왜 꼭 문학상을 수상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며 “문학 공모전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서 ‘당선’과 ‘합격’만이 사회적 신분으로 굳어지는 문제를 짚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장 작가는 삼성그룹 필기시험장, 문학상 심사 현장 등을 누비며 6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해 이 책을 완성했다. 3년간 취재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한국 사회는 ‘시험 사회’이자 ‘간판 사회’”라는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의 신분은 그 사람의 ‘간판’으로 나뉩니다. 그 간판을 얻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한국에선 ‘시험’이에요. 시험 합격 한 방으로 얻은 신분은 한 인간의 평생을 좌우합니다. 모든 시험이 견조하게 잘 짜여진 게 아닌데도요.”

잊혀질 만하면 한 번씩 대두되는 ‘한국문학 위기론’의 뿌리 역시 문학 공모전이라는 획일적인 시험제도에 있다고 장 작가는 진단했다. 한 번 등단에 성공하기만 하면 바로 ‘선생님’ 대접을 받고, 등단 후 그럴듯한 작품을 내지 못했더라도 ‘등단작가’라는 신분을 뺏기지 않는 점에서 문학 공모전 역시 국가고시나 대기업 공채와 비슷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나의 토익 만점 수기》로 문학상을 받은 심재천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었던 소설이 아닌 ‘공모전 모범 답안’대로 쓴 작품으로 등단했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쓰고 싶은 작품을 쓰는 대신 시험 준비를 위해 힘을 낭비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정말 슬픈 일이고, 사회적으로도 대단한 낭비 아닌가요?”

장 작가는 ‘합격장’ 대신 다른 종류의 순기능을 하는 간판을 많이 만들어야 사회가 보다 역동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문단에서 가장 좋은 간판은 ‘독자의 추천’”이라며 “각종 사이트나 블로그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독자 서평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회 전반적으로는 ‘퇴출’과 ‘수시·경력 채용’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험으로 한 번 뽑히기만 하면 성(城) 안에서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지금의 구조 대신 실력이 없으면 언제든지 성 밖으로 나갈 수 있고, 또 성 밖에 있는 유능한 사람이 언제든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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