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자동차회사 美 생산량 지적
배출가스 규제 강화도 시사
철강처럼 WTO 무시하고 강행 땐
현대차 등 국내 자동차社 타격
[ 유승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이 자동차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난 자리에서 수입 자동차에 2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거론해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 분야로 통상전쟁의 전선을 본격 넓히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은 올 들어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높은 관세를 매겨 반발을 산 데 이어 150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해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FCA) 도요타 혼다 등 미국에 생산공장을 둔 자동차업체 대표들과 함께한 간담회에서 수입 자동차 관세 부과 방침을 거론했다.
간담회 참석자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유럽 자동차회사들이 미국에서 차량을 많이 생산하지 않는다”며 무역 불균형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수입 자동차에 20% 관세를 부과하고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자동차를 제조해 외국으로 수출하라”며 미국 내 생산을 늘릴 것을 주문했다. 그는 세르조 마르키온네 FCA CEO를 거명하며 최근 멕시코 공장을 미국 미시간주로 옮기기로 한 사실을 언급한 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일이고 그는 이 방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수입차에 대한 20% 관세 부과가 미국 정부의 공식 방침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자동차업계는 미국 수출차의 관세·비관세 장벽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이 유럽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데 대해 유럽연합(EU)이 보복 조치를 한다면 유럽산 자동차에 관세를 매기겠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WSJ는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하지 않고 새로운 자동차 관세를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WTO 규정에 따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나라에서 수입되는 승용차에는 2.5%, 트럭엔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철강·알루미늄 등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밀어붙인 데서 보듯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차 관세도 강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경우 한국 자동차업계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미국 판매 물량의 50%가량을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 한·미 FTA에 따라 한국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할 때 관세가 면제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FTA 개정이나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물량엔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쿼터제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중 자동차 관련 조항을 수정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미국은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 소재와 부품 비중이 85% 이상인 자동차에 한해서만 무관세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은 62.5% 이상이면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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