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은행권에 두 번째 칼날… 'ATM 갑질' 혐의

입력 2018-05-13 19:14   수정 2018-05-14 09:39

협력업체 납품가 후려쳐
타행 낙찰가 확인 등으로
높은 가격 못 부르게 압박
주요 은행 현장조사 진행

ATM 가격 10년새 반값
은행 "시장경쟁 따른 결과"
제조업체 "가격 후려치기"



[ 임도원/김일규/김순신 기자 ] 국내 주요 은행들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협력업체에 대한 ‘갑(甲)질’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다. 2012년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사건에 이은 은행권에 대한 공정위의 두 번째 전방위 조사다. ATM 납품가격 하락이 은행의 강압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협력업체 간 경쟁 심화에 따른 결과인지를 놓고 치열한 진실 공방이 예고되고 있다.

◆역경매로 가격 후려쳤나

공정위가 국민, KEB하나, 우리, 농협 등 주요 은행을 ATM 관련 불공정 입찰 혐의로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공정위는 최근 전국은행연합회와 농협 등 일부 은행에 대해 현장조사도 벌였다.

이들 은행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로부터 납품받는 ATM 가격을 후려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른바 ‘역경매’와 ‘타행 낙찰가 확인’ 방식을 통한 입찰로 납품가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역경매는 은행이 납품받고 싶은 가격을 미리 정한 뒤 입찰 결과 예정 가격보다 높은 가격이 나오면 반복적으로 유찰시키는 방식이다. 예정 가격은 통상적으로 타행 낙찰가 확인을 통해 정해진다. 은행이 입찰 전에 ATM 제조업체로부터 다른 은행에서 낙찰받은 가격을 받아내 이를 예정 가격에 반영하는 식이다. 다른 은행보다 높은 가격을 부르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하는 셈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국민, 우리, 기업, 부산, 대구 등 10개 은행은 타행 낙찰가를 확인하고 이 중 국민, 우리, 기업, 부산, 대구 등 5개 은행은 역경매 방식 입찰도 진행하고 있다. 최정배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은행이 강압적으로 타행 낙찰가를 제출받았다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은행 “가격 외 제품 차별성 없어”

ATM 납품 가격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업계에 따르면 ATM 평균 낙찰 가격은 2009년 대당 1950만원에서 2015년 1200만원, 올해는 1100만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국내 ATM업계는 효성티앤에스(시장 점유율 약 50%), 에이텍(40%), 청호컴넷(10%)이 과점하는 시장이다. ATM 사업이 주력인 효성티앤에스는 수익성 악화로 인해 지난해 적자로 전환했고, 청호컴넷도 최근 수년 동안 매년 적자를 보고 있다. 관련 협력업체들은 최근 10년 새 수십 개가 도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ATM 납품 가격의 하락이 시장 경쟁 심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관련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ATM 업체 간에는 가격 외에 차별성을 갖기가 힘들다”며 “모바일뱅킹 확산 등으로 인해 ATM의 이용가치도 떨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은행들은 ATM 운영으로 매년 대당 166만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국내 주요 은행이 운영하는 ATM 수도 2016년 3만6632대에서 지난해 3만4122대로 6.9% 감소했다.

반면 ATM 제조업체들은 은행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한 ATM 제조업체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ATM 입찰에서 가격 외에 다양한 항목을 계량화하는 ‘정량 점수’ 방식을 주로 운용하고 있다”며 “중국 은행들만 해도 유지보수 능력이나 보안성 등을 중시하는데 한국 은행들은 지나치게 ‘가격 후려치기’에만 혈안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임도원/김일규/김순신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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