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처럼 햇살처럼 스며들었다" 조용필 50주년 기념 콘서트

입력 2018-05-14 08:47   수정 2018-05-14 11:08



(은정진 문화부 기자) 봄비가 내렸던 지난 12일 밤은 조용필 팬들에겐 비 대신 그의 음악으로 한껏 젖어든 시간이었다.

이날 서울 잠실동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조용필&<wbr />위대한 탄생 50주년 콘서트 ‘땡스 투 유(<wbr />Thanks to you) 서울’은 공연 내내 가랑비가 내렸다. 아침부터 내리던 빗줄기는 <wbr />저녁이 되자 제법 굵어졌다. 기온은 떨어졌지만 ‘가왕(<wbr />歌王)’을 기다려왔던 팬들의 함성과 열기는 공연장을 <wbr />뜨겁게 달궜다. 이날 공연은 이미 지난달 20일 서울 <wbr />공연 티켓이 판매를 시작한지 10분만에 전석 매진됐다.<wbr /> 공연 3시간 전부터 잠실종합운동장 역 일대는 그의 <wbr />노래를 기다리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번 공연은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 투어의 <wbr />시작을 알리는 콘서트였다. 뜻깊은 공연임을 알고 있던 <wbr />하늘의 장난이었을까. 15년 전 잠실주경기장에서 그가 <wbr />첫 공연을 했던 날처럼 이날도 비가 세차게 내렸다. <wbr />그동안 조용필은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일곱 차례 단독 <wbr />공연을 했다. 이 가운데 첫 콘서트였던 2003년 <wbr />35주년 기념 공연과 2005년 전국투어 ‘필 앤 <wbr />피스(Pil & Peace)’ 서울 공연에 이어 이날 <wbr />공연은 그의 세번째 빗 속 콘서트였다.

팬들은 우산과 우비를 입은 채 공연장에 들어가면서 <wbr />‘혹시나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wbr />했다. 하지만 KBS 불후의명곡 조용필 편 우승팀인 <wbr />남자아이돌 그룹 세븐틴이 그의 곡인 ‘단발머리’를 <wbr />부르는 등 오프닝 공연들이 그대로 이어졌다. 그 사이 <wbr />4만5000석의 객석을 꽉 채운 팬들은 모두 채워진 <wbr />채 그의 등장을 기다렸다. 당초 시작 시간이었던 저녁 <wbr />7시 30분보다 30분 늦은 8시께 콘서트가 시작됐다.

“네가 있었기에 잊혀지지 않는 모든 기억들이 내겐 <wbr />그대였지. 해주고 싶었던 전하고 싶었던 그 말. 땡스 <wbr />투 유.” 50년을 한결같이 응원해 준 팬들을 위해 <wbr />조용필이 만든 테크노 스타일의 자작 오프닝곡 ‘땡스 <wbr />투 유’가 울려퍼지자 조용했던 관중들이 일제히 “<wbr />조용필!”, “오빠!”, “와!” 함성을 지르기 <wbr />시작했다. 공연 트레이드 마크인 하얀 상·하의에 <wbr />가볍게 걸친 회색 조끼, 흰색 운동화를 신고 까만 <wbr />썬글라스를 쓴 그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기품 있는 <wbr />모습으로 등장했다.

첫 곡은 이승기 등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wbr />부른 ‘여행을 떠나요’ 였다. 원래 흥을 돋우는 공연 <wbr />엔딩곡으로 쓰던 노래지만 추위에 떠는 팬들을 시작부터 <wbr />뜨겁게 달구기 위해 첫 곡으로 배치했다.

하지만 <wbr />전반부부터 후반부까지 워낙 고음이 많은 곡인데다 <wbr />비까지 내려 기온이 떨어진 탓인지 그의 카랑카랑한 <wbr />목소리는 다소 힘이 빠진 듯 고음에서 자주 끊기는 <wbr />느낌이었다. 가왕은 가왕이었다. 두번째 곡 ‘못찾겠다 <wbr />꾀꼬리’부터 서서히 본래 음색을 끌어올린 그는 ‘<wbr />바람의 노래’, ‘그대여’, ‘어제 오늘 그리고’ 등 <wbr />자신의 명곡들을 연이어 부르며 컨디션을 되찾았다.

그가 이날 공연 첫 멘트로 “계속 날씨가 좋다가 <wbr />하필이면 오늘 이렇게 비가 옵니까. 아 미치겠어. <wbr />내일은 좋다잖아요. ”라며 빗 속에서 치러지는 세번째 <wbr />야외 공연을 푸념하자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wbr />그러면서 “정말 비 지겹습니다. 2003년 여기서 <wbr />처음 공연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비가 왔어요. <wbr />2005년에는 더했고요. 근데 한 분도 간 분이 <wbr />없었어요. 오늘도 그럴 거죠? 믿습니다.”라고 <wbr />요청했다. 이에 팬들은 2시간 20분동안 이어진 공연 <wbr />내내 비옷을 입고 자리를 지킨 채 ‘떼창’으로 <wbr />화답했다.

지난달 11일 데뷔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wbr />조용하고 차분하게 소감을 말했던 조용필의 모습은 이 <wbr />날 온데 간데 없었다. 젊은 아이돌 가수들처럼 <wbr />시종일관 무대를 뛰어다니며 노래로 팬들에게 감사 <wbr />인사를 전했다. 팬들이 “오빠!”라고 부르자 그는 “<wbr />왜? 왜 부르고 그래?”라고 말하기도 해 좌중을 <wbr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비 때문에 급히 <wbr />설치한 무대 위 천막 안에서만 노래하지 않고 일부러 <wbr />비를 맞으며 빗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팬들과 <wbr />소통하려했다. 공들여 단장한 머리가 빗속에서 망가지자 <wbr />아예 자기 손으로 흐트러뜨리는 등 팬들에 대한 <wbr />미안함과 감사함이 그대로 공연속에 묻어나왔다. 그는 “<wbr />여러분들 앞에 있어야 저도 좋은 것 같아요. 무대에서 <wbr />긴장한다는데 저는 긴장 안돼요. 너무 편해요. 평생 <wbr />딴따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50년까지 왔죠.”라며 <wbr />소감을 전했다.

이날 공연에서 어김없이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준 <wbr />것은 단연 2011년부터 이어져 온 ‘무빙 스테이지’<wbr />였다. 객석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메인 무대에서 <wbr />약 100m 가량 떨어진 가장 끝 관람석까지 레일로 <wbr />이동하는 무대다. 그는 공연장 한 가운데에서 무대를 <wbr />멈춰 세워 360도로 돌며 팬들에게 포즈를 취하며 <wbr />노래를 불렀고, 때로는 가장 끝에 있는 관객석까지 <wbr />무빙 스테이지를 끌고 와 팬들과 악수를 하기도 했다.

수많은 그의 명곡들을 팬들에게 다 불러주지 못하는 <wbr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조용필은 “제 노래 다 <wbr />못들려드려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다하려면 3일 내내 <wbr />공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접 통기타를 <wbr />메고 자신의 곡 중 ‘그겨울의 찻집’, ‘서울서울서울’<wbr />,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등 원래 선곡돼지 않았던 <wbr />노래들의 주요 구절을 즉석 메들리로 부르기도 했다.

<wbr />특히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로 <wbr />시작하는 곡 ‘허공’을 부른 뒤 그만 두자 팬들이 <wbr />떼창으로 후렴구를 이어 불렀고 결국 조용필도 따라 <wbr />1절까지 모두 불렀다. 조용필은 그 중 민요 ‘<wbr />한오백년’을 부르기 전 “이 곡은 스태프들과 논의하다 <wbr />제가 팬들을 위해 꼭 불러야겠다고 우겨서 넣은 곡”<wbr />이라고 소개했다.

공연의 최고조는 단연 록 사운드를 담은 곡 ‘<wbr />모나리자’ 였다. 그가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wbr />받아줄 수가 없나”라는 대목을 부르자 팬들은 일제히 후렴구인 “나의 모나리자, 모나리자, 나를 슬프게 하네”를 <wbr />합창했다. ‘슬픈 베아트리체’를 마지막으로 ‘<wbr />감사합니다’를 수십번 외치며 고개를 숙였던 그가 <wbr />무대에서 사라지자 팬들은 아쉬움속에 다시 한 번 “<wbr />앵콜”을 외쳤다.

많은 이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할때 <wbr />즈음 무대엔 다시 조명이 들어왔고 조용필은 무대로 <wbr />돌아왔다. 앵콜 첫 곡은 그가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wbr />비행기 안에서 즉석으로 만들었다는 곡 ‘꿈’이었다. <wbr />이후 ‘친구여’에 이어 어린아이부터 20대까지 가수 <wbr />조용필을 다시금 알게 해줬던 2013년 19집 <wbr />타이틀곡 ‘바운스’를 진짜 엔딩곡으로 꺼내들었다. <wbr />순간 ‘대형 클럽’을 연상케 하듯 모든 팬들이 리듬에 <wbr />몸을 흔들었다.

“비처럼 젖어들었습니다. 햇살처럼 스며들었습니다.”<wbr /> 그가 공연내내 바라봤던 객석 3층 현수막엔 이런 <wbr />멘트가 걸려 있었다. 조용필의 노래는 50년이 <wbr />지났음에도 팬들과 대중들에게 비처럼 햇살처럼 다가오는 <wbr />힘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공연이었다. 이날 공연을 <wbr />시작으로 조용필은 19일 대구 월드컵경기장, 6월 <wbr />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 6월 9일 의정부 <wbr />종합운동장에서 ‘땡스 투 유’ 전국 투어를 이어나간다. <wbr />(끝) /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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