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논점과 관점] 되새겨야 할 '이승만의 투쟁'

입력 2018-05-15 17:33   수정 2018-05-16 06:45

홍영식 논설위원


6·25전쟁이 길어지고, 희생자가 늘어나자 참전국들은 발을 뺄 궁리를 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1953년 1월 취임 직후부터 휴전 협상을 밀어붙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강력 반대했다. 휴전이 되면 미군은 떠날 것이고, 한국이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판단했다.

6·25전쟁이 일어난 것도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한 미국이 1949년 미군을 철수시켰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 대통령은 미국과의 ‘살벌한 투쟁’에 들어갔다. 이 대통령의 일방적 반공포로 석방(1953년 6월18일)과 독자적인 북진통일론이 미국을 긴장시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美 '이승만 제거작전' 세우기도

반공포로 석방에 놀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대통령 8년 재임 중 자다 일어난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면도하던 중 이 소식을 듣고 얼굴을 베였다고 한다. 뒤통수를 맞은 미국은 이 대통령 제거를 위한 ‘에버-레디(Ever-ready)’ 작전까지 세우기도 했다.

약소국 대통령이 ‘거인’ 미국과 ‘불퇴전’을 벌인 이유는 ‘안보 안전판’ 확보를 위해서였다. 철군하려던 미국이 이 대통령 요구를 수용하면서 1953년 10월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맺어졌다. 미군의 한국 주둔도 명시됐다. 이 대통령은 “거인 미국과의 싸움은 냉정이 필요했고 그 과정은 고독했다”고 회고했다.

남북한은 ‘4·27 정상회담’에서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최대 쟁점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될 것이다.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목적은 주한미군 철수에 있다. 일각에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지고, 주한미군 주둔 명분도 사라진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한·미 상호방위조약엔 주한미군 주둔 근거로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공격’을 명시하고 있다. ‘북한 위협에 대처’ 등의 표현은 없다. 북한보다 광범위한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다.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주둔 문제는 다른 사안이라는 얘기다.

평화협정과 조약이 반드시 평화를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25년 독일은 영국·프랑스 등과 불가침 내용 등을 담은 ‘로카르노조약’을 맺었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이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1938년 독일과 영국 간 ‘뮌헨협정’, 1939년 ‘독일·소련 불가침조약’ 등도 마찬가지였다. 1973년 미국, 남·북베트남이 맺은 ‘파리평화협정’도 2년 뒤 북베트남의 기습 남침으로 무위가 됐다. 평화협정을 어기면 북베트남을 쓸어버릴 것이라고 약속한 미국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북한이 그간 보여온 행태를 보면 신뢰성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4·27 판문점 선언’에 있는 남북한 간 적대행위 중지, 불가침, 평화체제 구축,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등은 이전의 남북 합의문에 담긴 단골메뉴들이다. 북한이 이런 합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미사일로 위기를 증폭시켜왔다는 사실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핵폐기 하더라도 핵위협 여전할 것

설사 북한이 핵을 폐기하더라도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안전한 한반도’를 보장할 수 있을까. 3000여 명에 달하는 ‘핵두뇌’와 이들이 남긴 ‘핵지식’이 있는 한 북핵 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 또 중국의 패권욕은 무엇으로 막나. 본격 북한 핵 담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불거진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대보다 냉정과 이성이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주둔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이승만 대통령의 ‘고독하고 냉정한 투쟁’도 상기해봤으면 한다.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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