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경제부 기자) 어느 조직에서나 가장 막강한 권한은 인사일 겁니다. 일반 기업, 금융회사 뿐만 아니라 공기업, 정부부처도 마찬가지죠. 본인의 인사고과와 승진 여부를 쥐고 있는 상사 앞에서 부하 직원들은 철저하게 을(乙)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인사 권한을 자발적으로 내려놓은 최고경영자(CEO)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은행의 이주열 총재입니다. 앞으로 한은에서 고위직으로 불리는 1급의 승진 인사는 종전처럼 이 총재가 아닌 윤면식 부총재가 결정합니다. 이 총재가 기존 총재의 인사 권한을 부총재에게 대폭 위임하기로 했거든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한은 내부에 인사운영관직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윤 부총재가 위원장으로 있는 경영인사위원회의 실질적인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고 부총재의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초대 인사운영관은 채병득 인사팀장(2급)이 맡게 됐습니다. 채 팀장은 한은 내부에서도 특정 학연이나 지연에 얽매이지 않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통한답니다.
그동안 한은의 인사 시스템을 보면 여러 단계로 이뤄져 있었답니다. 인사팀장이 국장, 부총재보, 부총재에게 줄줄이 보고를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새로 역할을 맡게 된 인사운영관은 부총재 직속이라 부총재의 지시를 받고, 부총재에게만 보고를 하면 됩니다. 부총재의 강화된 인사 업무를 가까이서 보좌하는 역할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듯 합니다. 부총재가 채용, 승진, 이동, 상벌 등 인사 관련 예민하거나 중요한 이슈의 원칙과 기준을 정하면 인사운영관이 실무를 수행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죠.
이 같은 이 총재의 결정에 한은 안팎에선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한은 내에서 1급은 국장이나 실장, 해외사무소장 등 소수에 불과합니다. 총재와 직접 머리를 맞대고 크고 작은 한은 내외부 일을 맡는 자리입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1급 인사에는 총재의 의중이 상당 부분 작용했던 게 사실입니다. 능력 있고 ‘손발’이 잘 맞는 직원과 일하게 되면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니까요. 고위직 인사에 대해선 대부분의 기업이 비슷한 상황일 겁니다.
점차 부서 내 국장의 인사권도 강화될 전망입니다. 부총재가 1급의 승진과 이동을 결정하면 부서 내 하위 인사는 국장이 전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입니다.
지난달 이 총재의 연임 결정 전후로 한은 내부에서 총재의 인사 권한을 두고 뒷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특정 대학에 대한 편중 인사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이 총재는 연임 결정 직후부터 ‘권한의 하부 위임’을 줄곧 강조했습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한은의 조직 문화 변화와 함께 인사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답니다. 그리고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인사 혁신안을 내놓은 겁니다.
스스로 인사 권한을 내려놓으면서 불필요한 논란과 과중한 업무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이 총재는 통화정책과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 등 본연의 업무에 좀더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은 내부 경영 관련해서도 5명의 부총재보에게 업무를 분산시켰습니다. 부총재보들이 기존 전문 분야 외에도 한은의 경영 이슈에 좀더 책임감을 갖고 뛰어들라는 취지이기도 합니다.
1950년 한은 설립 이후 68년 만에 처음으로 시도되는 이같은 인사 혁신이 한은의 모습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지켜보면 좋을듯 합니다.(끝) /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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