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보기 좋다고 살기 좋은 것 아니다

입력 2018-05-17 18:10   수정 2018-05-18 05:23

이광훈의 家톡 (5) 사람이 살지않는 '명품 주택'



‘건축학개론’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명품 주택이 세 채 있다. 세계 3대 건축가로 꼽히는 거장이 설계한 작품이다. 한 채는 프랑스에 있고, 두 채는 미국에 있다. 프랑스에 있는 것은 건축가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 미국에 있는 것은 20세기 최고의 주택으로 찬사를 받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落水莊)’, 그리고 모더니즘 건축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미스 반 데 로에의 ‘판스워스 하우스’다. 명실공히 유럽과 미국을 대표하는 명품 주택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만 연간 수십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이들 주택은 지금도 수많은 건축가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집주인에게는 어떨까? 세 채의 명품 주택에는 지금 사람이 살지 않는다. 집주인들이 떠났기 때문이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세 채의 집주인은 모두 자신의 주택을 명품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사람이 살기 위한 공간으로서는 그랬다.

프랑스의 보험회사 중역이었던 피에르 사보아가 1928년 르 코르뷔지에에게 설계를 의뢰해 주말주택으로 지은 빌라 사보아는 부실 건축의 대명사였다. 집주인은 단열이 잘 되는 아늑한 집을 원했으나 사방으로 길게 난 수평창으로 추위에 시달렸으며 습기가 빠지지 않는 구조로 곰팡이를 달고 살았다. 9년간 고통을 받던 집주인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집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낙수장’의 탄생은 더 드라마틱했다. 미국 피츠버그의 백화점 사장이었던 카우프만의 의뢰를 받아 건축한 이 주택은 폭포 위에 지은 독특한 외관으로 완공되자마자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라이트는 카우프만에게 이 집을 넘겨주면서 ‘당신이 폭포를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폭포와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그게 문제였다. 내부 계단을 통해 폭포와 연결된 구조는 아름다웠지만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를 밤낮으로 듣는 것은 고통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 건축물 중 경주 양동마을의 ‘향단(香壇)’이 있다. 조선 중기 유학자인 회재 이언적 선생이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지은 이 한옥은 지금도 자손이 살고 있으며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이 주택이 유명한 것은 ‘□’자형의 독특한 구조와 마당이다. 작은 쪽마당에 불과하지만 기와 추녀를 따라 열린 하늘은 결코 작지 않다. 손바닥 안에 우주를 담은 형국이라고나 할까. 정말 명품 주택은 주택으로서의 기능을 지속하면서 이렇게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 아닐까.

속담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집은 보기 좋다고 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집으로서의 살기 좋은 요소는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축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돈을 투자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이광훈 드림사이트코리아 대표

전문은 ☞ m.blog.naver.com/nong-up/22126626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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