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일단 짓자"…빈집 늘어도 교외 개발 계속하는 이유

입력 2018-05-18 09:37  

日 콤팩트시티 육성, 교외개발로 난항
韓 공급과잉에도 돈 되는 집장사 몰두




올 게 왔다. 전국 각지에 불 꺼진 아파트가 늘어나면서 건설사들이 ‘미입주 공포’에 떨고 있다. 일부 단지는 입주율을 높이기 위해 건설사가 세입자를 알선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건설사들은 아파트 공급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분양이 적체된 곳에서 또 공급에 나선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일본의 콤팩트시티(압축도시) 실패사례에서 그 답을 찾을 수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지방소멸 우려에도 교외 개발 계속되는 일본

지방소멸이란 단어까지 나오는 일본에선 교외 개발이 멈추지 않고 있다. 왜 지방에서 개발이 계속 되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으로 국내 건설사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답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달 말 정부의 콤팩트시티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2045년 대부분의 도시 인구가 15년 전과 비교해 2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도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2014년부터 각 지자체에 ‘입지 적정화 계획’을 세울 것을 권고하면서 집적도가 높은 콤팩트시티 개발을 유도 중이다. 상업·복지·업무·여가·문화시설 등을 중심지에 집중적으로 배치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인구를 중심지로 모으는 전략이다. 그래야 우편·전기·도로 등 공공서비스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외 개발은 줄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116개 시·정이 콤팩트시티 조성 계획을 수립했지만 이 가운데 65곳(56%)에서 총 1098건의 교외개발이 신고됐다. 지자체가 건설계획을 막은 사례는 없었다. 농지가 택지로 전환되는가 하면 대형매장 개발도 교외에서 진행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자체의 30%가 오히려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며 “도시 쇠퇴를 피하기 위해 더욱 강한 수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교외 개발을 계속하는 것은 권리관계가 복잡한 기존 시가지를 재생하는 것보다 논·밭을 개발하는 것이 편해서다.

◆‘입주 쇼크’ 지방 이어 수도권 강타

국내 사정은 어떨까. 교외 개발이 계속되면서 주택이 과잉공급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연말까지 입주하는 아파트와 오피스텔은 48만8000가구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41만5000가구)와 비교해 17%가량 늘었다. 내년에도 예년 수준을 웃도는 36만4000가구가 집들이를 할 예정이다. 연간 입주물량은 금융위기 직후이던 2009년 30만 가구 아래로 떨어진 뒤 줄곧 20만 가구 안팎 수준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한 2016년(31만9000가구)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입주물량은 내년까지 3년 연속으로 10만 가구를 넘는다. 1·2기 신도시 개발 때보다 많다. 올해가 18만7000가구로 정점이다. 지방을 보면 경남(3만9000가구)과 충북(2만1000가구), 충남(2만9000가구), 강원(1만6900가구) 등지에서 역대 가장 많은 새 집이 쏟아진다.

단기간 집중된 ‘공급 폭탄’ 부작용은 곳곳에서 나오고 중이다. 창원에선 4000가구가 넘는 아파트 단지가 통째로 미분양이다. 구미와 포항, 거제 등 지역산업이 침체된 지역을 비롯해 충청권에서도 미분양이 빠르게 쌓이고 있다. 새 아파트 가격은 분양가 밑으로 내려갔다. 공급물량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세시장은 안정화 단계를 넘어 역전세난에 빠졌다. 시흥, 안산, 화성 등 수도권 남부 도시에선 집주인이 세입자를 찾지 못하면서 기존 세입자들의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지고 있다.

건설사들은 바짝 긴장하는 중이다. 대단지 아파트 두세 곳의 입주가 지연되거나 해약이 늘어나도 자금 흐름에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아파트 입주율은 76.3%로 6개월째 70%대에 머무르는 중이다. 강원과 제주는 입주율이 68%에 불과했다. 다음 달 수도권에서 대단지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는 건설사 관계자는 “TF를 꾸리는 등 초비상이 걸렸다”면서 “입주가 어려운 집주인들에겐 세입자를 알선해주고 금융권과 연계한 대출상담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규 분양 지속

그럼에도 건설사들은 신규 분양을 계속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건설사들은 409개 사업장에서 41만7786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지난해 공급물량(26만4907가구) 대비 57.7% 늘어난 수준이다. 최근 5년(2013~2017년) 평균 분양실적(30만7774가구)에 비해서는 11만 가구(36%)나 많은 수치다. 이미 공급 과잉인 지역에서도 신규 분양을 멈추지 않는다. 충북 청주시에선 올해 12개 단지 1만 920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미분양 관리 지역으로 지정돼 관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의 두 배에 달하는 아파트 물량이 쏟아지는 것이다.

건설사들이 이 같은 무리한 집짓기에 몰두하는 건 사업다각화에 실패한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축소한 데다 해외수주 부진까지 겹치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보단 당장 돈벌이가 되는 국내 주택시장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들의 실적에서 주택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대림산업과 GS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주요 상장사들은 올해 1분기 매출 가운데 60% 이상을 주택사업에서 올렸다고 공시했다. 한 중견 건설사 대표는 “아파트 짓는 건 작은 건설사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대형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브랜드를 내세워 ‘땅짚고 헤엄치기식’의 집장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기 개발에 집중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도 공급과잉을 부채질하고 있다. 수요는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도시개발구역, 산업단지 등을 지정하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지자체장이 표를 얻거나 치적을 쌓기 위해 선심성 공약·개발을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들의 ‘계획 인구’ 부풀리기 관행은 고쳐지지 않고 있다. 계획 인구는 도로·상하수도·택지 조성 등 도시계획 수립의 기초가 되는데 비현실적인 수치를 근거로 계획을 수립하다 보니 과잉공급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높다.

경기도에 따르면 2020년 경기도 계획 인구는 모두 1636만3000명이다. 현재 1278만명(주민등록 기준)에서 향후 3년 이내에 358만여명이 추가로 출생하거나 유입될 것으로 일선 지자체들은 집계했다. 하지만 이는 통계청이 집계한 2020년 경기지역 인구 1310만7000명보다 24.8% 많은 수치다. 국내도시기본계획의 인구를 모두 합치면 총인구가 2억명을 넘는다는 통계도 나온 바 있다.

주로 도심 정비보단 땅값이 싼 외곽의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까닭에 ‘내륙의 섬’ 또는 ‘교통오지’도 속출하고 있다. 외곽 개발은 인프라 확충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관리비용과 행정비용의 낭비로 이어진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30년 이상 이어진 택지중심 대규모 공급은 단기간 주거안정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외곽 지역에 공급이 집중되는 까닭에 미래 도시기능에 큰 부담을 가져올 수 있다”면서 “거점별로 집적도가 높은 개발이나 도심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이 활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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