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말레이시아의 '중국인 차별 정책'

입력 2018-05-21 17:22  




(유승호 국제부 기자) 말레이시아가 지난 9일 총선에서 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루면서 이 나라의 말레이계 우대 정책 ‘부미푸트라’에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새 정부의 실세이자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에 이어 총리직을 물려받을 것으로 알려진 안와르 이브라힘이 부미푸트라 폐지론자이기 때문입니다.

부미푸트라는 말레이시아 원주민과 토착민을 일컫는 말인데요. 말레이계 국민을 우대하는 정책을 뜻합니다. 말레이시아는 헌법에 부미푸트라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토지를 말레이인이 갖도록 하고, 공직 일부를 말레이인에 할당하며, 특정 사업의 면허를 일정 비율 이상 말레이인에게 준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교직에 말레이인을 우선 채용하는가 하면 말레이인만 입학할 수 있는 대학도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말레이시아는 3200만 인구 중 말레이인이 60%가량 됩니다. 특정 집단을 우대하는 정책(affirmative action)은 소수 인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레이시아는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죠.

이런 정책의 배경엔 말레이시아의 독특한 사회경제적 구조가 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인종적으로는 말레이인이 다수이지만 경제적으로는 20% 남짓한 중국계가 우위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레이계와 중국계 간 갈등이 잠복해 있죠.

말레이계와 중국계의 경제적 격차가 폭동으로까지 이어진 일도 있습니다. 1969년 5월 말레이계와 중국계가 충돌해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인종 간 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공무원 채용과 사업 인허가 등에서 말레이인을 우대하는 정책을 내놓았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책이 수십년 간 이어지면서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이 말레이계 소유라는 이유만으로 사업권을 얻고, 정부 실세와 유착한 기업들이 특혜를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말레이시아 경제가 많이 성장했고, 부미푸트라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말레이인의 경제적 지위도 올라갔습니다. 말레이인 중에서도 잘사는 사람이 많은데 굳이 말레이인만을 대상으로 한 우대 정책이 필요하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죠.

또 말레이인에 대한 우대가 결과적으로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면서 우수한 인재가 외국으로 떠나는 부작용도 생겼습니다. 말레이시아 인구 중 중국계 비중은 1970년 34.3%에서 2015년 23.6%로 줄었습니다.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말레이인에 대한 우대 정책은 폐지하되 자립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인종에 상관 없이 정부가 지원해 주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차기 총리가 유력한 안와르는 지난 17일 AP와 인터뷰에서 “말레이인 우대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며 “인종에 상관없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부미푸트라에 대한 중국계 유권자들의 불만이 이번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한 배경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5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부미푸트라를 변경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과거보다 경제적 격차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말레이계와 중국계의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각종 우대 조치를 폐지하면 말레이계가 반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마하티르 총리가 1981~2003년 총리로 집권했을 땐 부미푸트라를 강화했다는 점에서 정책을 크게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경제 효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인종 갈등도 줄이는 묘수가 있을지 말레이시아 새 정부의 고민이 커지고 있습니다. (끝) /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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