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 강화 가능성에 WTI 1.4% 급등
[ 유승호 기자 ] 이란 핵협정을 탈퇴한 미국이 21일(현지시간) 이란에 ‘플랜B’를 제시했다. 이란 전역에 대한 핵사찰 등 미국이 제시한 12가지 사항을 받아들이면 경제 제재를 풀고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 “역대 최고의 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박했다. 이란은 “단 하나도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란 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 유가는 큰 폭으로 올랐다.
◆폼페이오 “이란 파괴할 것”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서 한 연설에서 “미국은 지금도, 앞으로도 이란의 핵개발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란에 새로운 핵협정 체결을 요구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새 협정에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핵개발 포기 △플루토늄 재처리 중단 △이란 전역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허용 △탄도미사일 발사와 개발 중단 등 12가지 요구사항이 포함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적대행위와 헤즈볼라 등 테러집단 지원을 중단하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미국은 2015년 7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체결한 이란 핵협정이 이란의 핵개발을 영구적으로 차단할 수 없고,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막을 수 없다는 이유로 지난 8일 핵협정에서 탈퇴하고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재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란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제재를 중단하고 외교·상업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건해 이란의 현대화를 돕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란이 이를 거부하면 “전례 없는 금융 제재를 가하겠다”며 “역사상 가장 강한 제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이란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를 파괴할 것”이라며 “이란은 다시는 중동에서 지배력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CNBC 등 외신들은 핵 포기를 조건으로 경제 지원을 약속하되 최대한의 압박을 가한다는 점에서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는 방식을 이란에 적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미국이 결정하는 시대 끝났다”
이란은 즉각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이란 ILNA 통신을 통해 “미국이 세계를 결정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오늘날 세계는 미국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폼페이오 장관을 향해 “이란과 세계의 앞날을 결정하려는 당신은 누구인가”라며 “(12가지 요구사항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일축했다. 이어 “각국은 주권을 갖고 있다”며 “이란은 이란을 위한 길을 계속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이란 핵협정 유지를 주장해 온 유럽도 미국의 제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폼페이오 장관은 이란 핵협정 탈퇴가 어떻게 중동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방법인지 보여주지 못했다”며 “기존 협정의 대안은 없다”고 비판했다.
국제 유가는 상승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6월물은 이날 1.4% 급등한 배럴당 72.24달러에 마감했다. 2014년 11월 이후 3년6개월 만에 최고치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7월물 브렌트유도 전날보다 0.9% 상승한 배럴당 79.2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미국이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베네수엘라의 석유 수출 봉쇄를 검토하기로 한 점도 유가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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