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끝) 기획부터 생산·마케팅·유통까지 '완벽한 플랫폼'
모든 제조공정 주도
원료 추천·임상시험 의뢰까지
소규모 기업들 공장 짓지 않고도
6개월 만에 화장품 출시 가능
글로벌 브랜드도 '러브콜'
CC크림 70% 코스맥스가 생산
선스틱·워터프루프 마스카라 등
톡톡튀는 히트 상품들 선보여
[ 민지혜 기자 ] 섬유회사 웰크론은 지난해 자회사 웰크론헬스케어를 통해 뷰티산업에 진출했다.
자사의 원단 기술력을 적용한 시트 마스크팩, 자체 연구개발(R&D)한 민감피부용 기능성 성분 등을 활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화장품 제조 공장을 설립하기엔 투자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화장품 제조·판매업체 코리아나화장품을 찾았다. 웰크론이 개발한 성분을 바탕으로 제조 레시피를 짰다. 성분 배합량이 적당한지, 피부에 잘 스며드는지, 향과 촉감은 좋은지, 용기에 담았을 때 사용하기 불편하진 않은지 등을 여러 차례 테스트했다. 임상시험 전문기관에 제품 검증을 의뢰하고 용기업체로부터 케이스를 납품받아 병입하는 등 모든 공정을 마쳤다. 사업 구상에서부터 마스크팩과 클렌징폼, 스킨, 로션 등을 내놓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6개월에 불과했다.
웰크론헬스케어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대를 겨냥한 보디용품 브랜드 ‘나인 드롭스’를 생산하고 있다. 이번엔 제주도산 원료성분 특허를 갖고 있는 화장품 제조업체 UCL과 손을 잡았다. UCL의 피부임상센터를 거쳐 오는 9월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화장품 창업 붐, 제조의뢰 증가로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데는 국내의 촘촘한 제조 인프라가 뒷받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브랜드 이름과 콘셉트만 정하면 제조업체들이 모든 생산공정을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코스맥스 한국콜마 등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업체들은 브랜드 컨설팅에서부터 제품별 레시피 제안, 용기 및 라벨 추천, 임상시험 전문기관 의뢰, 병입 및 포장 등 필요한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있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사업자 등록을 내기만 하면 된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화장품 제조·판매업체 수는 1만80곳. 1년 전(8175개)보다 23.3% 늘었다. 올 들어 ODM업체를 찾아오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코스맥스의 올해 1분기 신규 거래처 수는 지난해 동기보다 75.8% 급증했다.
한국콜마에 제조 상담을 의뢰해온 건수도 올해 1분기에 15% 이상 증가했다. 한 번에 생산하는 양이 적은 소규모 사업자는 한국콜마가 생산하거나 계열사인 내츄럴스토리로 연결해준다. 내츄럴스토리는 인천에 있어 중국 수출도 쉽다. 최근엔 다품종 소량생산을 요청하는 1인 사업자가 크게 늘었다는 게 한국콜마 측 설명이다.
국내 ODM업체들은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로레알그룹, 에스티로더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 유니레버 등 글로벌 업체들의 제조 의뢰가 늘고 있어서다. 여기에 국내 신생 브랜드, 1인 창업 기업까지 가세했다. 코스맥스는 2013년 중국 광저우에 추가로 공장을 세웠고 2014년 인도네시아에 이어 2015년부턴 미국 뉴저지주에서 공장을 가동 중이다. 코스맥스 관계자는 “연간 생산 가능한 화장품 수량은 한국에서만 5억7000만 개, 세계 공장을 다 합치면 16억 개”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0여 개국 600여 개 회사에 제품을 판매해 화장품 매출만 1조원을 달성했다. 한국콜마의 현재 생산 가능량도 12억6000만 개에 달한다.
히트상품 개발해 영역 확대
한국 화장품 제조 인프라의 핵심은 연구개발 능력에 있다. 단순히 제조 의뢰를 받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창적인 특허 기술을 보유·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유명 브랜드가 판매하는 CC크림은 코스맥스가 개발한 제품이다. 현재 유통되는 CC크림의 70%가 코스맥스 생산분이다. 또 이 회사가 개발한 젤아이라이너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5000만 개 이상 팔렸다. 한국콜마가 제조한 JM솔루션의 꿀광마스크는 최근 1년 동안 1억3000만 장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중국에서 1초에 3.5개씩 팔린다. 카버코리아의 AHC가 히트시킨 아이크림도 한국콜마가 개발한 제품으로, 2015년부터 현재까지 5000만 개 이상 팔린 인기 상품이다. BB크림, 워터프루프 마스카라, 선스틱 등 독창적인 인기 상품 모두 한국 ODM업체의 손에서 나왔다.
국내 제조기술은 그 품질과 속도 면에서 탁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장품을 생산하는 데 4~6주면 충분하다. 기획부터 판매까지 전 공정은 짧으면 2~3개월, 길어도 6개월이면 된다. 다양한 화장품 브랜드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수시장은 한국 여성들을 상대로 제품을 테스트하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여기에 뷰티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 톡톡 튀는 네이밍으로 젊은 층을 사로잡는 마케팅 전략 등이 뒷받침되면 헬스&뷰티(H&B) 스토어 등으로 유통망을 확대한다. 이를 기반으로 해외 판로를 넓힐 수 있는 건 물론이다.
기획부터 생산, 판매, 마케팅에 이르는 비즈니스 플랫폼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스타 브랜드들이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정선 웰크론헬스케어 마케팅팀 부장은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전체 제조공정을 맡길 수 있는 회사뿐만 아니라 코리아나화장품, UCL 등 일부 공정을 잘 만드는 회사도 아주 많다”며 “제조 시설을 갖추지 않더라도 뷰티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게 한국의 강점”이라고 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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