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나랑 둘이만 있으니까 너무 좋다."
몇 년 전 숙소 바로 옆에 풀장이 있는 리조트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였다. 아이들은 종일 지치지도 않고 물놀이를 했고 덩달아 나도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잠을 자려는 그때 동생이 먼저 잠든 걸 확인한 첫째 딸이 기다렸다는 듯 "엄마. ○○(동생 이름)이 자니까 빼고 우리끼리 산책 나갈까"라고 제안했다.
뜻밖의 제안에 아이 손을 무작정 잡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여름이긴 했지만 밤공기가 상쾌했고 풀벌레 소리도 들려왔다.
산책이라고 해봤자 야간 조명이 켜져 있는 수영장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빙 도는 것에 불과했는데 아이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는지 연신 "엄마랑 나랑 둘만의 시간이야", "둘이 산책한 건 처음이다. 그치? 너무 좋아"라면서 한껏 들떠 있었다.
생각해보니 시간이 날 때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 애쓴다고 썼지만 아이들 각자와 따로 별도로 시간을 가진 적은 거의 없었다.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나눠갖는 것이니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 느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두 아이가 각자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고 양쪽에서 조잘거리고 한 아이 질문에 답해주고 나면 나머지 한 아이는 "엄마 내가 지금 한 말 들었어?"라고 다그치기 일쑤다.
당황해서 "미안해. 이제 말해봐. 뭔데"하면 볼멘 얼굴로 다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던 아이들.
내 귀는 두 개여도 한 번에 한 가지씩 밖에 들을 수 없다는 걸 이해시키기에는 아이들이 아직 너무 어렸다.
큰 딸과 손잡고 낮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풀들도 구경하고 낮에 여기서 놀았던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수영장을 한 바퀴 돌고 나니 20분 여가 지났다.
아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이제 숙소로 들어가자고 했다. 평소 보던 것보다 훨씬 밝은 얼굴이었다. 엄마랑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는 그 성취감이 아이에게는 '둘만의 비밀'이 생긴 것 마냥 신나는 일이었나 보다.
다음날 아침 동생이 일어나자마자 큰 아이는 "너 어제 자는 동안 엄마랑 나랑 둘이서만 산책했다!"라고 자랑하기 바빴고 화들짝 놀란 작은 아이는 "왜 나만 빼고!"라며 발을 굴렀고 "오늘 밤에는 내가 엄마랑 둘이 산책할 거야!"라고 경쟁심에 불타올랐다.
지인들이 둘째를 낳을지 말지 고민해 오면 "자매라서 둘이 너무 잘 놀아", "엄마 아빠도 편하려면 둘은 있어야지"라며 잘 지내는 아이들에 대해 평소 뿌듯해만 했을 뿐 사랑을 더 받고 싶은 아이의 속마음은 미처 몰랐던 것 같아 한없이 미안해졌다.
부모의 사랑 외에 자기들에게 소유권이 있는 사물에 대해서도 티격태격 주도권 싸움이 더욱 심화된 아이들은 늘 "엄마 언니가 때렸어~", "엄마 ○○이가 양보를 안 해"라면서 고자질하기 바쁘다.
둘도 없는 친구처럼 그렇게 알콩달콩 잘 놀다가도 어느 순간 평소 관심 없던 책도 누군가 읽기 시작하면 내가 먼저 읽겠다 싸우고 강아지 2마리를 데리고 산책 좀 나갈라치면 '내가 먼저 잡았다'면서 한 마리 목줄을 서로 잡겠다고 아웅다웅 거리는 바람에 나는 매번 목덜미를 잡아야 한다.
'언니~언니~'하고 쫓아다니다가 어느 순간엔 가족 중 좋아하는 순위를 말하면서 "엄마는 1등, 아빠 2등, 할머니 3등, 할아버지 4등…. 5등은 초롱이(반려견), 6등은 토토(반려견 2), 7등은 니코(앵무새), 8등은 다롱이(거북이), 그리고 마지막 꼴찌가 언니야"라며 언니가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존재인지를 늘 어필하는 둘째.
하루는 그 둘째 아이가 심각하게 말했다.
"엄마, 나만 낳지 언니는 왜 낳은거야. 나도 외동딸이었으면 좋겠어. 너무 살기 편했을 것 같아."
한숨까지 쉬며 짐짓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도 다른 건 몰라도 이제 그 소원만은 들어줄 수 없어 마음이 짠해진다.
'그래 내가 더 잘할게. 싸우지 좀 마. 으휴'
워킹맘의 육아에세이 [못된 엄마 현실 육아]는 네이버 맘키즈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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