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체로 사람과의 만남에서 상대방의 호감을 사기를 바란다. 호감을 얻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상대방을 칭찬하는 것이다. 그런데 칭찬은 조금 지나치면 아첨에 이르기 쉽다. 조선시대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연암집》 ‘마장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첨하는 말에도 상중하의 수준이 있다. 몸을 가지런히 하고, 얼굴을 다듬고, 말을 얌전하게 하고, 명예나 이익에 초연하고, 상대방과 사귀려고 하는 마음이 없는 척하는 것이 최상의 아첨이다. 간곡하게 바른말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보인 다음, 그 틈을 잘 활용해 뜻이 통하도록 하는 것은 중급 수준의 아첨이다. (…) 상대방의 입술과 안색을 살피면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좋다고 하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무조건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이 가장 하급의 아첨이다.”
변호사에게 사회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잠재적 고객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도 사람을 만날 때 은연중 그 만남이 변호사 업무와 연결되기를 바라고, 또 그에 맞춰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다른 한편 이런 마음가짐과 행동이 어쩌면 순수해야 할 인간관계를 왜곡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의 마음도 함께 갖곤 한다. 아첨에 관한 성현의 분석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도 아마 이런 직업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꼭 그렇게 걱정할 일만은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생각하는 (아주 연약한) 갈대’다. 모든 사람은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비난을 받으면 기분이 상한다. 관계의 멀고 가까움을 떠나 상대방의 작은 말이나 행동에도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자 한계인 것이다.
아첨도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인 이상 그 정도가 지나쳐 상대방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한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상대방을 칭찬하고 상대방 의견에 수긍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정확한 지적이나 충고보다 더 긍정적 인간관계를 낳을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선의와 말의 품격만 갖춘다면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 생각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외국 저명한 기관의 오랜 연구 결과를 보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여러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타인과 좋은 공동체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남을 잘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람은 인간의 본성을 잘 이해하고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다. 면전에서는 상대방의 좋은 점을 잘 살펴 최대한 칭찬하고 면전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모든 영역의 사회활동에서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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