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및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
교역비용을 줄이는 통상정책 펴야
이석배 < 美 컬럼비아대 교수·경제학 >
오리무중에 가까운 국제 정세를 생각해 보면 남북 교류 및 통일로 인한 경제 효과를 논하기는 아직 이른 듯하다. 북한의 개방으로 인한 경제 효과를 추정하는 것과 관련해 경제학자들의 과제는 국제 무역으로 인한 소득 이익이 어느 정도인지를 추정하는 것이다.
최근 폴 안트라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글로벌 가치사슬의 지리(地理)에 초점을 맞춰 무역으로 인한 소득 증대 효과를 추정했다. 가치사슬은 기업 활동에서 부가가치가 생성되는 과정을 뜻하며, 글로벌 가치사슬은 부가가치 창출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기업의 활동이 운송·통신의 발달로 인해 세계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글로벌 가치사슬에서는 생산에 투입되는 재화가 전(前) 단계에서는 어디서 오는지, 생산된 재화는 다음 단계에서 어디로 운송되는지를 고려해 기업이 생산 위치를 정하게 된다. 교역 비용이 기업의 생산 위치 선정에 미치는 효과는 가치 사슬의 상류 단계에 있는지 하류 단계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안트라스 교수의 모형은 각 국가가 외생적으로 주어진 지리에 따라 무역에 관한 중심 지수(centrality index)가 다르다고 설정한다. 예를 들어, A국가가 B국가보다 좀 더 중심에 있다는 것은 A국에서 다른 국가로 상품을 운송하는 것이 B국에서 운송하는 것보다 더 저렴하다는 가정이다. 이 모형에서는 교역 비용이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누적돼 영향을 미치므로, 상대적으로 중심에 있는 국가가 하류 단계의 생산보다 비교 우위에 있게 된다.
외생적으로 주어진 생산 비용에 따라 기업들이 상황에 맞춰 선택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을 경제학 용어로 ‘부분 균형 분석’이라고 한다.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반 균형 분석’이 필수적이다. 생산 비용이 결정되는 과정까지 모형에 추가해 안트라스 교수는 일반 균형 분석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무역의 이익을 여러 시나리오상에서 추정했다. 특히 무역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자립 경제에서의 일반 균형 결과와 현재 상황을 비교해서 무역의 이익을 계산했다. 세계산업연관표(WIOD) 자료를 이용한 결과, 미국은 3.3%의 실질 소득 증가가 있고 룩셈부르크는 75.9%의 증가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한국은 11.3%였고, 중국 5.3%, 일본 4.9%, 대만 17.9% 등이었다. 경제 규모가 클수록 내수가 중요하므로 상대적으로 무역의 증대 효과가 더 작았다.
WIOD 자료는 질이 높기는 하지만 자료에 포함된 국가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안트라스 교수는 190개국의 자료가 포함된 Eora(다지역투입산표를 작성하기 위해 호주 시드니대학에 근거를 둔 호주연구위원회 기금으로 진행한 프로젝트) 자료를 추가 분석했다. 이 자료에는 북한도 포함돼 있는데 북한의 무역 이득은 3% 증가로 추정됐다. 북한은 세계 경제에 편입된 정도가 작아서 자립 경제에 가까운 편이므로 상대적으로 이득 폭이 작다.
안트라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글로벌 가치사슬을 고려할 경우에 상대적으로 무역의 이득이 더 큰 것으로 나왔다.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이 세계화를 주도하고 기업 간 네트워크가 중요한 시점에서 보면 기업의 생산과정을 좀 더 현실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경제 모형에서 무역의 효과가 더 큰 것이 당연할 수 있겠다. 교역을 제한하는 요소는 지리적 한계 외에도 많다. 각국의 통상정책과 국가 간 무역협정에 따라 교역 장벽이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다. 이런 요소를 고려한 일반 균형 모형을 발전시켜 무역의 이득을 추정하는 것이 현재 경제학 연구의 방향이다.
세계화에 직면한 국내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이해한 통상정책을 설정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북한 핵문제에 잘 대응해 한반도에서 불확실성을 줄이는 외교·안보 정책이 교역 비용을 줄이는 통상정책이기도 한 것이다. 미국과 북한의 행보가 좌충우돌하는 듯 보이더라도 각자 최대의 이익을 노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정부의 현명한 대처가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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