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의구심 커지는 소득주도 성장] '경제학계 "소득주도 성장론은 실증 안된 '이단' 경제학" 평가

입력 2018-06-0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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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설 기자 ]
문재인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 성장’은 학계에서도 적잖은 비판을 받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가계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경제가 성장하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란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가설’ 수준이란 게 주류 경제학자들의 비판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에 기반한 정책 실험은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고 있다.

분배 중시한 좌파 케인스 학파가 주장

소득주도 성장론의 근원은 폴란드 경제학자 미하우 칼레츠키의 경제학 이론이다. 칼레츠키는 1930년대 《경기변동론》을 출간하면서 이 이론을 제시했다. 20세기 거시경제학의 거장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동시대 인물이다. 두 학자 모두 유효수요(돈을 갖고 물건을 사거나 생산하려는 경제적 욕구) 부족을 당시 극심했던 불황의 원인으로 진단했다. 하지만 세부 내용은 판이했다.


케인스는 기업 투자가 부족해 유효수요가 위축되고, 투자를 결정하는 기업가의 모험심이 경기를 활성화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비해 칼레츠키는 소비 부진이 유효수요 부족을 가져온다고 봤다. 소비 부진의 원인은 전체 소득 중 노동자 임금의 비중이 적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케인스는 기업 투자를 중시하는 우파 경제학, 칼레츠키는 소득 분배를 중시하는 좌파 경제학을 주요 배경으로 삼았다.

칼레츠키는 소득 중 기업가에게 돌아가는 이윤과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임금의 비중, 즉 기업·노동 간 소득 분배를 중시했다. 기업가보다 노동자가 더 많이 소비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임금의 비중이 작아질수록 유효 수요가 부족해져 불황이 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임금 비중을 높여야 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칼레츠키의 생각은 헝가리 태생 경제학자 니콜라스 칼도어 등 좌파 성향의 후기 케인스주의자로 이어졌다.

실증되지 않은 ‘경제학의 이단’

후기 케인지언의 이론은 기업가 이윤과 노동자의 소비 중 후자에만 지나치게 무게를 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검증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들의 이론은 소득(임금)이 오르면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면 투자도 늘어나 경제가 성장한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이는 소득이야말로 성장의 결과이지, 성장의 원천이 아니란 경제학의 일반론과는 완전히 상반된 논리다. ‘칼레츠키파’가 기업 투자와 고용을 중시하는 정통 경제학에선 수용 불가능한 ‘이단 경제학’으로 분류된 이유다.

칼레츠키 이론은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임금주도 성장론’으로 이어받았다. 임금주도 성장론은 국민소득 중 소비 성향이 높은 임금 비중을 높일 경우 ‘공평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내 진보학자들이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으로 이름 붙였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홍장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부경대 교수 시절 이론적 설계를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 수석은 칼레츠키, 후기 케인지언과 비슷한 논리를 폈다.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소득 비중이 클수록 소비, 투자, 수출이 늘 것이란 주장이다.

‘개방경제’ 아닌 ‘폐쇄경제’를 전제

소득주도 성장은 세계적으로도 시도된 적이 없는 정책이다. 복지·분배정책을 적극 펼쳐온 남유럽·남미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고 있다는 의미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근본 한계는 ‘폐쇄경제’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개방경제’에선 임금이 과도하게 오를 경우 상품 경쟁력이 확 떨어질 수 있다. 자칫 수출이 감소해 전체 근로자 소득이 줄 수 있다. 기업이 국내 투자를 줄이고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면 일자리 감소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진보 경제학자들이 “1914년 미국 포드가 근로자 임금을 당시 평균임금의 두 배 넘게 인상해 소비 진작, 기업이윤 증대를 이뤘다”고 주장하지만 당시엔 도요타자동차와 같은 경쟁 상대가 없었다.

기업 비용에서 임금 비중이 커지면 소득 불평등은 되레 악화할 수 있다. 이미 고용된 사람의 몫이 늘어날 수 있어도 기업들이 신규 고용 자체를 꺼리게 돼서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소득 분배율이 크게 높아졌는데도 불구하고 계층별 소득분배율을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상승(소득분배 악화)했다. ‘공평한 성장’을 추구하는 임금 주도 성장이 ‘불공평한 성장’이란 역설을 낳았다.

◆ NIE 포인트

현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론을 핵심적 경제정책으로 채택한 과정을 알아보자. 소득주도 성장론이 주류 경제학계에서 비판을 받는 이유를 정리해보자. 소득주도 성장론에 기반한 정책이 도입 취지와는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란 비판을 토론해보자.

이설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solidarit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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