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은 과도한 정부 간섭 탓 위상 실추
국중호 < 日 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
지난달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서는 ‘4·27 판문점 선언’ 지지와 함께 자유무역협정(FTA) 재추진 등 경제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다음날 세 나라의 정경(政經) 대표자 사진이 한국경제신문에 크게 실렸는데 위화감이 느껴졌다. 일본의 재계 대표 참석자는 게이단렌(經團連: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이었지만 한국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법정 경제단체지만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나 게이단렌은 민간 경제인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세운 사단법인이다. 관례대로라면 한국의 재계 대표 참석자는 전경련 회장이 마땅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경련은 2016년 하반기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에 연루된 이후 재계를 대표해 민간 경제외교를 하기에는 그 위상이 실추돼 있다.
전경련은 일본의 게이단렌을 참고해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주도 아래 1961년에 설립됐다(당시는 한국경제인협회). 그 후 현대, LG, SK, 효성 등 내로라하는 기업 총수들이 회장을 맡아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로서의 위상을 굳혀갔다. 그러던 전경련은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 연루 이후 삼성 등 4대 그룹이 회원사에서 탈퇴하면서 존립 위기에까지 몰리기도 했다.
전경련의 위상 실추를 두고 재계만을 탓하기는 어려운 한국의 특이성도 자리한다. 막강한 힘을 갖는 대통령이 기업 오너를 불러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의 지원을 부탁한다고 하자. 그런 부탁이 내키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요구하면 기업 오너 입장은 난감해진다. 거절하자니 권력의 힘이 기업 전체의 불이익으로 번질까 두렵고, 도와주자니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 지원 특혜 시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추된 위상을 만회하고자 전경련은 지난해 3월 허창수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정경유착 근절, 투명성 강화, 싱크탱크 기능 강화를 골자로 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를 바꿔 말하면 한국 재계가 정경유착이 심했고 투명성이 약했으며 싱크탱크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유감스럽게도 국민이 전경련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도 따가운 실정이다.
‘2017년 전경련 사업보고서’에는 “1961년부터 최고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해온 회장단 회의는 폐지되고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 역할을 하게 됐다”고 돼 있다. 그렇더라도 삼성, LG, SK, 현대차 4대 그룹이 탈퇴한 전경련이 재계를 대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는 누가 명실상부한 한국 재계의 대표인지 말하기도 어려워졌다.
어떤 단체가 발족했을 때 일본은 그 단체를 장기간 유지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게이단렌은 전경련보다 15년 앞선 1946년 설립됐으나 지금도 여전히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조직이다. 그런 게이단렌 회장의 요건으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정경협력’인데, 이는 한국의 ‘정경유착’과는 크게 다르다. 지난달 말 히타치제작소의 나카니시 히로아키 회장이 게이단렌 회장에 새로 취임했다. 그는 경제계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하면서도 정부와의 협조를 강조했다.
게이단렌은 ‘국민 생활의 향상에 기여할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정관 제3조). 전경련도 ‘국민 경제의 발전을 위한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 촉진’을 그 비전으로 제시하나(정관 제1조), 기업 지배구조나 노사문제에 대한 현 정부의 간섭이 심한 편인지라 정책 당국자와 재계의 엇박자가 감지된다. 정부와 재계의 불협화음이 계속되면 국민 경제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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