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긴축 발작' 때처럼
선진국 금융긴축 이어지면
신흥국 급격한 자금이탈
美, 이달 금리인상 유력
한·미 금리 역전현상 심화
제2 금융위기 뇌관 우려
[ 김은정 기자 ]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된 가운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신흥국 금융불안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르헨티나 등 일부 신흥국의 통화위기가 확산돼 글로벌 경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나온 한은 총재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낮아진 중립금리, 경기 대응 어려워”
이 총재는 4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18년 한은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해 “최근 미국 금리 상승과 달러화 강세가 일부 신흥국 금융불안의 원인이 됐다”며 “앞으로 선진국들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급격한 자본이동과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3년 테이퍼 탠트럼(긴축 발작)을 꼽았다. 당시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신흥국의 통화 채권 주식이 동시에 급락했다.
이 총재는 “각국 금융과 교역이 서로 긴밀하게 연계돼 있으며 특히 주요국은 자국 정책 변화가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다시 국내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Fed는 오는 12~13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 금리는 연 1.75∼2.00%로 한국(연 1.50%)과 0.50%포인트 격차가 발생한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6년5개월 만에 금리 인상으로 통화정책의 방향을 틀었지만 불확실한 국내외 경기 탓에 반년가량 금리를 동결하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선 이미 휘청거리는 신흥국에서 미국 금리 인상 여파로 자금 유출이 심해지면서 ‘제2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작동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립금리가 상당폭 낮아진 점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중립금리는 경제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압력 없이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이론적인 적정금리 수준을 말한다. 그는 “중립금리가 낮아지면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을 때 정책금리를 인하할 여지가 줄어든다”며 “정책금리가 하한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져 경기 변동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물가안정목표제, 도전에 직면해”
이날 콘퍼런스에선 정부·국회 등이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통화정책에 압력을 가하는 일을 막기 위해 재정 건전성 유지와 관련 제도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는 기조연설을 통해 “정부나 국회가 경제·재정개혁으로 성장률을 제고하기 어려울 때 중앙은행의 정책수단 동원을 기대할 것”이라며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지키려면 재정 건전성, 명확한 부실 금융회사 정리, 자본투입 원칙을 담보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공적인 통화정책 체계로 평가되던 물가안정목표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안정 문제가 부각되면서 도전에 직면했다는 진단도 내렸다. 그는 “물가안정목표제는 물가 안정을 성공적으로 달성했지만 거시경제 안정을 보장하지는 못했다”며 “지난 30년간 주요 경제 위기를 초래한 것은 부채, 높은 자산 가격으로 대표되는 금융 불균형이었다”고 지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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