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현충원 산책길

입력 2018-06-05 17:45  

오형규 논설위원


서울 사람들이 지척에 두고도 잘 안 가게 되는 곳들이 있다. 63빌딩 전망대, 한강유람선, 그리고 동작동 국립 서울현충원일 것이다. 호국영령들의 넋이 잠든 현충원은 대개 엄숙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장소로 여겨 선뜻 발길이 안 간다. 하지만 현충원의 별칭이 ‘호국(護國)공원’이듯, 도심 속 최고의 공원이란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1954년 국군묘지로 출발한 현충원은 총 143만㎡에 6·25전쟁, 월남전 등에서 산화한 전몰 군경과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등의 묘(墓) 약 5만9000기가 조성돼 있다. 1965년 국립묘지, 2005년 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현충원에 들어서면 숙연해진다. 묘비의 생몰연도를 보면 불과 열아홉, 스무 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많다. 그래선지 시인들은 “죽어서도 나란히를 하고 있는 병사들”(박봉순 ‘현충일에’)의 묘비 앞에서 “그대들 꽃같은 나이 앞에/살아있음이 미안스럽고/살아 주절거려 온 언어가 송구스럽고/ 해마다 현충일에 늦잠 잔 것도 용서받고 싶다”(유안진 ‘국군묘지에 와서’)고 고백했지 싶다.

현충원은 관악산에서 뻗어나온 야트막한 공작봉(166m)이 좌우를 호위하고 한강과 맞닿아 있다. 6·25 직후 5만 기 이상 들어가면서 인가가 드물고 배수가 잘 되는 곳을 물색하다 급히 정한 자리다. 그런데 잡고 보니 선조의 할머니이자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安)씨 묘역이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

현충원을 빙 둘러 3㎞의 둘레길이 있다. 언덕길, 꽃길, 숲길이 고루 있어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체력단련 시설도 있다. 300년 넘은 느티나무를 비롯해 벚꽃길, 이팝나무길, 은행나무길이 철따라 아름답다. 조망대에서 바라보는 한강 풍경도 일품이다. 주변 숲은 50년간 출입이 통제돼 울창하고 딱따구리, 파랑새, 소쩍새 등 조류가 26종이나 서식한다.

잔디광장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들을 보노라면, 목숨 바쳐 이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들께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항일 의병대장, 임시정부 요인, 역대 대통령, 국가유공자 묘역은 그 자체로 역사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자녀들과 함께 꼭 현충원을 둘러보기를 권한다. 다만 현충일에는 유가족에게 양보하는 게 좋겠다.

안타깝게도 전체 묘의 6할을 차지하는 6·25 전몰 장병을 찾는 이들이 점점 줄고 있다고 한다. 주말에 현충원을 산책하며 그분들께 꽃 한 송이라도 놓아드리자.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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