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역할은 없고 청와대의 밀어붙이기뿐
실업사태 맞기 전 소득주도성장 재검토를
김태기 < 단국대 교수·경제학 >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은 한국이 경제 성장과 소득 평등을 달성한 비결로 좋은 정책을 꼽는다. 정책이 자본과 기술 부족을 극복하고 교육과 고용 기회 확대를 통해 중산층을 키운 점에 높은 점수를 준다. 과거보다 조건이 훨씬 좋아진 지금은 어떤가. 고도 성장은 멈추고 소득 불평등이 올라가는 나라, 저(低)임금 국가와 고숙련 국가에 끼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 정치가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나라로 평가한다. 나쁜 정책 때문이다. 자본이 떠나고 노동생산성이 저하되고 기술혁신은 겉돈다. 이제는 적폐청산이라는 정치논리가 좋은 정책을 밀어낸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각종 지표가 말해준다. 이대로 가면 경제 위기와 대량 실업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고 과제인 일자리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은 딴소리를 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말하자 청와대 참모들은 정반대라고 펄쩍 뛴다. 이들은 담당 부처를 못 믿는지 직접 나선다. 고용 부진의 원인을 인구구조 변화 탓으로 돌리고 통계를 왜곡하면서까지 부작용이 없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책실장, 경제수석, 일자리수석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이 경제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도 모르면 장관이라도 보완해야 한다. 참모를 통해 대통령의 뜻을 전달받고 참모가 설친다 해도 장관은 본연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 정책은 결국 부처의 몫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대통령의 체면은 현장에 있는 장관이 뛰어야 살릴 수 있다. 일선 공무원과 함께 좋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일자리를 살릴 장관들은 어디 갔나.
부총리는 정책 전반을 아우르는 자리지만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국정기조인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관계 설정에 실패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소득주도성장파, 부총리는 혁신성장파로 나뉘면 안 된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말할 때 소득주도성장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혁신정책을 밀어붙였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에 핵심 변수인 산업정책을 담당한다. 그런데 에너지에만 관심을 쏟는지, ‘중국 쇼크’가 확산되고 산업계가 위기에 떠는데 어디에 있는지 무기력해 보인다. 기업가의 의욕을 끌어낼 수 있도록 전면에 서야 한다. 구조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신산업은 어떻게 키울 것인지, 산업 규제는 어떻게 줄일지 답을 내놓아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정작 중소기업이 인건비 가중으로 존립 위기에 몰리는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적극적인 정책은 외면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할 일을 거드는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돕도록 만든다는 구태의연한 정책을 내걸었다. 기술혁신과 세계화에 맞게 중소기업 비전과 전략부터 세워야 한다.
일자리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용을 파괴하는 정책에 매달렸다. 10%(노동조합 가입 근로자 비중)를 대변하는 노동계를 의식하고 산업구조와 고용구조 변화에 역행하는 구시대적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노사자치주의를 존중하고 취약계층 근로자의 실질적 이익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데 역주행을 했을 뿐이다.
일자리 문제가 가장 심각한 청년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부 장관은 뒤로 빠지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노동력 수급 불일치와 직업교육을 방치하고 실습교육은 폐지하는 황당한 정책을 취했다. 입시제도에 매달렸지만 결론도 못 내리고,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운 대학 진학으로 학생들을 떠밀고 있다. 청년고용 문제의 실태와 원인부터 공부해야 한다.
경제 악화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지지도가 높다.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압승도 예상된다. 그러나 좋은 시절이 오래갈 수는 없다. 경제는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는 현실의 문제다. 경제 불안과 정책 불만이 목까지 차오르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자조차 그렇다.
정책 및 내각 쇄신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남북협력도 어렵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소득주도성장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정책도 수정해야 한다. 참모들은 정직하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대통령이 전문가들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도록 보좌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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