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부터 매년 두 차례 방북
'한반도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 힘써
"韓, 인도주의 지원의 중심돼야"
[ 이미아 기자 ] “북한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있다고 해도 한국 정부에서 대북 의료지원을 외면할까요?”
스티븐 린튼 유진벨재단 회장(69·사진)은 최근 경기 안양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 정부가 예술단 공연 같은 1회성 이벤트에만 집중하면서 당장 필요한 의료지원 분야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1995년 미국에서 설립된 유진벨재단은 1997년부터 22년째 북한에서 다제내성결핵 치료사업을 하고 있다. ‘인세반’이란 한국 이름으로 유명한 린튼 회장은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 방북한다. 올해엔 지난달 약 3주간 북한에 다녀왔다.
다제내성결핵은 기존 결핵약에 내성이 생긴 ‘슈퍼결핵균’에 감염된 병을 말한다. 공기를 통해 전염되며, 아직 예방법은 없다. 린튼 회장은 “다제내성결핵은 한반도의 에볼라 바이러스로 북한에 8000여 명의 환자가 있다”며 “한 사람이 주변 열두 명에게 병을 옮길 만큼 전염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가 북한 의료지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건 집안 대대로 이어진 남북한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유진벨재단의 이름이기도 한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목사는 1895년 미국에서 남장로교 목사로 한국에 파송돼 전남 지역에서 선교 사업을 펼쳤다. 벨 목사의 사위이자 린튼 회장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튼(한국명 인돈)은 40여 년간 호남 지역에서 교육사업과 선교활동을 했다. 인돈 목사의 아들이자 린튼 회장의 아버지인 휴 린튼(한국명 인휴)은 전남 지역에서 결핵퇴치 사업에 힘썼다.
린튼 회장은 “지난달 방북 때 북한이 이전보다 훨씬 개방적인 태도로 대하는 느낌이었다”며 “북한이 더 이상 결핵 문제를 은폐하지 않고,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 차원에서 퇴치에 나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한반도 정세 안정 이후 진정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으려면 세계 인도주의적 지원의 중심 기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색을 배제하고, 의료 및 식량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에 적극 나서야 ‘코리아 패싱’을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개성에 다제내성결핵 관련 연구소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린튼 회장은 “개성은 남북 교류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며 “한반도 정세 개편을 계기로 남북 정부와 의학계에서 다제내성결핵 퇴치를 위해 함께 협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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