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합의·파기 반복…신뢰만 금가
다시보는 美·北 회담
역사北, 대가 챙긴 뒤 검증 회피
美는 제재·대화 '실패' 거듭
6·12회담 신뢰 구축 중요
CVID-CVIG '빅딜' 주목
[ 이미아 기자 ] 미·북 비핵화 협상은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계기로 열린 고위급 회담에서 처음 시작됐다. 그 후 25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지금까지 남은 건 ‘서로 믿지 않는다’는 불신감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새로운 신뢰 구축 여부다. 신뢰 형성이 선행돼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의 체제보장 약속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를 요구한다. 북한은 미국에 ‘완전한 체제보장(CVIG)’을 반대급부로 원한다.
양측의 협상 역사는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1994년 제네바 합의가 성사됐지만 북한은 2002년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을 시인했고, 이듬해 1월엔 또다시 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미·북 대화는 다자 대화인 6자회담으로 확대돼 풀리는 듯했다. 2005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그 대가로 체제 안전 보장을 골자로 하는 ‘9·19 성명’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북은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은 북한과 거래하는 은행을 제재하고, 북한은 대포동 2호 발사와 핵실험으로 맞서면서 미·북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했고 2007년 북한 핵시설 동결 이행 절차를 구체화하는 ‘2·13 합의’를 했다. 후속조치로 2008년 중국에 핵시설 및 핵물질에 대한 신고서를 제출하고,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전 세계에 공개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북한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시료 채취를 비롯한 과학적 검증은 완강히 거부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도 협상은 계속됐다. 양측은 2012년 우라늄 농축 중단과 대북 식량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2·29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북한이 그해 4월 장거리 로켓 발사, 이듬해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대화는 중단됐다. 북한은 이후 지난해까지 총 여섯 차례 핵실험을 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번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특유의 ‘살라미 전술’에 말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살라미 전술은 협상을 여러 개로 토막 내 단계마다 이익을 얻는 전술이다. 북한은 과거 협상 때마다 살라미 전술을 구사해 경제적 보상을 취하면서도 결국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얼마나 진정성 있는 신뢰 관계를 구축하느냐가 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