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45) 헤겔 (하): 인정투쟁

입력 2018-06-11 09:01  

"'내'가 '나'라는 것을 인식해야 '자기의식' 생기죠
자기를 인정받으려면 타인도 인정해야 해요"




이솝 우화의 ‘욕심 많은 개’

그러나 기존의 관점과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 우화는 단지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교훈과는 별도의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다리를 건너던 개는 물속에 비친 모습을 보고 왜 짖었을까? 그것은 개가 물속에 비친 그것이 자신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제 것을 보고 욕심을 내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우화에 나오는 개는 욕심이 많기 때문이라기보다 물속에 비친 그것이 자신임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짖었고 그로 인하여 물고 있던 고기를 놓친 것이다.

‘내’가 ‘나’라는 것을 아는 것을 어렵게 표현하여 ‘자기의식’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자기의식이란 거울을 보고 그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화에 나오는 개는 ‘자기의식’이 없는 존재이다. 우화의 개와 같이 모든 동물들은 자기의식이 없다. 이와 달리 모든 인간은 자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여 의식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도 처음부터 자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나’라는 말을 쓸 줄 모른다. 예컨대 삼둥이의 막내인 만세라는 아이는 무서운 상황에서 “만세는 무서워~, 만세는 무섭다고!”라고 하며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부른다. 즉, 남들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그대로 사용한다. ‘남들이 자신을 아무개로 부르니 자기도 자신을 아무개로 부른다’는 것은 아직 자기의식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마찬가지로 아주 어린아이들은 거울을 보고도 자기 자신인 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인 줄 알면 진정한 인간이 된 것이다.

자기의식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

‘자기의식’을 인간의 본질로 파악하고 인간과 사회 및 역사를 설명한 철학자가 바로 헤겔이다. 그의 《정신 현상학》은 철학사에서도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책이지만, 이 책 중 ‘자기의식’을 설명하는 장에 나오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일 뿐 아니라 헤겔 철학 전체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헤겔은 개인과 개인의 인정투쟁으로부터 사회의 형성과정을 설명한다. 인간은 누구나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가지면서 동물과 달리 자기의식을 갖는다. 그런데 사회의 출발점은 인간들이 서로 상대방을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욕망의 대상으로서만 보면서 전개되는 생사를 건 ‘인정투쟁’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을 인정하기보다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타인을 자기의식으로서 섬기기보다 타인의 자기의식을 부정하고 타인이 자신의 자기의식을 존중하며 섬겨 주기를 바란다.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여 인정을 받기 위해 싸움이 일어나는데, 이 싸움은 자기의식을 갖는 인간으로서 대우받느냐, 아니면 자신의 자기의식을 인정받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대우받기를 포기하느냐를 결정하는 중대한 투쟁이기 때문에 각각은 자신의 생명을 건 투쟁을 한다.

이때 한 쪽의 자기의식은 동물적 생명을 초월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생명에 대한 예속에서 벗어나 타인의 인정을 획득하고, 주인의식이 된다. 한편, 다른 쪽의 자기의식은 자기의식으로서 자신을 주장하기보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생명에 집착한 결과, 주인의 허락을 받아 사물로 안주하고 노예의식이 된다. 이렇게 하여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자기의식의 상호인정에 의한 욕구체계로서의 사회이론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와 타인을 동시에 인정해야 ‘황금률’

“참된 자유는 나와 타자와의 동일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타자가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또 나에 의해서 자유로운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만 나는 참으로 자유롭다.”(정신 현상학) 내가 인정받으려 하면 타인도 마찬가지로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존립기반을 타인에게서 구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타인을 인정해 주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타인 부정은 자기 부정이고, 타자 긍정은 자기 긍정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이를 먼저 행함으로 ‘상호인정’이라는 선순환을 만들어내느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성경 마태복음7:12)는 예수님의 말씀이 왜 인간관계의 황금률(Golden Rule)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 기억해주세요

참된 자유는 나와 타자와의 동일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타자가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또 나에 의해서 자유로운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만 나는 참으로 자유롭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서울국제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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