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북·미 회담 현장에서] 김정은의 "과거" 발언과 '4중 경호막' 사이

입력 2018-06-12 13:24   수정 2018-06-12 13:45

北 김정은, 트럼프에게 “우리 발목 잡는 과거” 발언

숙소에서 출발할 땐 호텔직원·현지경찰·北 경호원 철통방어
개방과 체제 보장 사이 딜레마 그대로 드러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세기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우리의 발목을 잡는 과거”란 발언을 했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폐쇄적 스타일에서 벗어나겠단 의미도 담겨 있겠지만 말투가 사실상 ‘자아비판’이라 크게 주목됐다.

하지만 이날 오전 8시15분경(현지시간) 숙소인 세인트리지스호텔을 나서는 김정은 일행의 모습에선 북한 체제 특유의 폐쇄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른바 ‘방탄경호단’으로 불리는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김정은의 곁을 에워 쌌다. 취재진 앞 프레스라인엔 호텔 직원과 현지 경찰, 북한 경호원들이 4중 경호막을 형성했다. 투숙객과 기자들 모두 휴대폰을 꺼낼 수 없었다. 사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지 말라”는 호텔 직원들과 경찰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북한 고위급 인사들과 실무진, 경호원들은 출발 전 호텔 1층 뷔페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 7시께부터 경호원들과 보장성원(지원인력)들이 뷔페에 왔다. 이용호 외무상과 최강일 외무성 북미국 국장대행, 이용호 외무상과 최강일 외무성 북미국장, 이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도 양복 차림으로 내려와 아침 식사를 했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에겐 약간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뷔페 안에서도 휴대폰을 들면 경호원들이 손짓으로 땅을 가리키며 내려 놓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일행들끼린 비교적 자유롭게 식사를 했다. “커피는 어떻게 주문하지?”, “잘 됐겠죠?”, “오늘 늦게 안 끝나겠죠?” 등의 말이 오갔다.

7시50분께 이용호 외무상과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로비로 내려왔다. 노광철은 군 정복 차림이었다. 수행원 중 한 명이 큰 목소리로 “주성 동무(김정은의 통역원 김주성) 내려왔나”라고 수차례 어딘가에 물었다.


8시12분, 김정은이 로비에 등장했다. 철통 경호는 3분 후 풀렸다. 북한의 이른바 ‘김씨 왕조 체제’가 어떤 건지 실감한 순간이었다.

김정은은 전날 밤 싱가포르 시내에서 가장 화려하기로 이름난 마리아베이 일대를 둘러봤다. 그리고 12일 회담 당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걸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3대 세습의 독재자다.

김정은은 비핵화와 경제발전, 체제 안전 보장이란 세 가지 딜레마를 한꺼번에 짊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 딜레마 사이의 간극은 너무도 커 보였다.

싱가포르=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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