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로봇’이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자동차나 선박을 조립하는 육중한 로봇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니면 반도체 공장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나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장면과 같은 정보기술(IT)분야 작업장의 분위기가 연상됩니다. 반면 식품 가공 분야에선 컨베이어 벨트를 제외하면 로봇 등 기계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부분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서는 식품 가공업 분야에서 로봇을 활용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최근 산업용 로봇이 일본 식품가공 분야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주요 식재료들은 규격화된 공산품과 달리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 이어서 자동화가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로봇 기술발전과 일본 내 일손부족 현상 심화 영향으로 빠르게 많은 부분의 작업이 로봇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일본 홋카이도 오호츠크해 해변에 있는 한 수산가공공장에선 현지에서 채취한 가리비 껍질을 로봇이 분해해 식재료인 관자 부분만 잘라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분당 96개의 가리비를 처리한다고 합니다. 숙련된 직원 11명분의 일을 로봇이 해내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3년 전부터 시험 가동을 한 뒤 올 6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홋카이도 소재 기계 제조업체 니코가 제작한 이 로봇은 팔은 일본 산업용 로봇업체 야스카와전기 제품을 사용했습니다. 기존에 화장품 박스포장 등에 사용되는 제품을 활용했다는 전언입니다. 화상처리 기술을 이용해 조가비가 맞물리는 경첩과 같은 부분을 확인해 가리비 껍질을 열도록 설계됐습니다.
과거에는 10명가량의 중국인 기능실습생을 포함해 25명의 직원이 가리비 껍질을 까는 작업을 했지만 일본 어촌 지역의 고령화 심화로 일손을 구하기 어렵게 되면서 자동화를 적극 추진하게 됐다고 합니다. 지역 협동조합에서 1억 엔(약 10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입해 로봇 도입을 결정했습니다.
가리비 까는 로봇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선 감자에서 돋아난 싹을 자동으로 제거하는 로봇도 나왔습니다. 홋카이도의 기계업체 신세멧쿠가 개발한 이 로봇은 자동차 부품업체 덴소의 부품을 활용해 만들었습니다. 감자를 돌려가며 싹의 위치를 파악해 제거하는 로봇이라고 합니다. 감자 한 개당 2초의 작업시간이 소요된다는 설명입니다. 감자튀김 등 감자가공 업체 공급용으로 제작했습니다.
눈길을 끄는 로봇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 일본에서도 식품가공 분야에 로봇 도입은 초기단계입니다. 일본 로봇공업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내 산업용 로봇 구매의 40%는 반도체 등 전기·전자 분야가 차지했습니다. 자동차 업종 비율도 30%에 달했습니다. 식료품 분야는 산업용 로봇 도입의 2%에 그쳐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심각해지는 일손부족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식료품 산업에서도 로봇의 도입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 일본 언론의 전망입니다.
앞으로 음식의 맛의 상당 부분을 ‘로봇의 손맛(?)’이 담당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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