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카트리나 레이크 스티치픽스 CEO "바쁜 당신 위해 대신 옷 골라줄게요"

입력 2018-06-14 17:09   수정 2018-08-16 17:15

30~40대 워킹맘들이 반했다
상품 아닌 소비자 경험에 집중 '대박'

소비자 선택권을 제거하자
쇼핑 즐겁지만 시간·에너지 들어
20弗 내면 옷 골라주는 서비스로
'쇼핑이 귀찮은' 사람들 열광
200만명 넘는 회원 단숨에 확보
매출 年1조원 넘으며 나스닥 상장도

넷플릭스의 노하우 활용
데이터 분석가 60명 채용해
추천의 질·큐레이션 능력 높여
소비자 취향 맞춰 콘텐츠 제공하는
AI 도입 후 추천 기능 더 정교해져
고객 80%가 추천받은 옷 구매



[ 설지연 기자 ]
“소비자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단 한 벌의 청바지를 찾고 싶어 하지, 수많은 선택권을 원하지 않는다.”(카트리나 레이크 스티치픽스 CEO)

쇼핑은 언제나 즐겁고 화려한 것으로 묘사된다. 쇼핑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쇼핑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원하는 색상과 스타일, 브랜드, 가격, 재질 등 다양하다 못해 과한 기준을 따지다 보면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취향을 잘 아는 누군가 알아서 옷을 골라주고 집까지 배달해 준다면 어떨까.

2011년 직장 생활과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동시에 소화하며 ‘시간 부족’에 시달린 카트리나 레이크는 이런 생각으로 ‘스티치픽스’란 쇼핑몰을 열었다. 20달러를 내면 옷을 골라준다는 이 서비스는 단숨에 ‘쇼핑이 귀찮은’ 이들을 끌어들이며 200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레이크 최고경영자(CEO)가 보스턴의 작은 원룸에서 5명의 직원과 꾸렸던 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은 단숨에 연 1조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지난해엔 나스닥 상장 기업이 됐다.

쇼핑이 귀찮은 사람을 위한 쇼핑몰

올해 35세 여성인 레이크 CEO가 스티치픽스를 만든 건 자신이 실생활에서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하버드 MBA 수업을 듣는 바쁜 생활을 했다. 옷 한 벌 살 시간도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생각을 바꿔 쇼핑에서 가장 귀찮은 부분인 ‘선택’을 제거한 쇼핑몰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여성의 옷을 골라주는 스타트업 ‘랙 해빗’을 처음 설립했다.

레이크 CEO는 보스턴의 지인들을 만나 엑셀 시트에 그들의 취향을 일일이 받아 적었다. 하지만 모든 업무를 수작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노력에 비해 수익은 적었다. 그는 고민 끝에 정보기술(IT)을 스타일링에 접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랙 해빗이 스티치픽스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스티치픽스는 특히 30~40대 ‘워킹맘’에게 인기가 많다. 카트리나 본인도 두 살짜리 아기를 둔 워킹맘이다. 레이크 CEO는 하버드 MBA 입학시험에서 이런 내용을 적었다. “남성 엔지니어들은 포커나 야구, 전자기기 쇼핑을 편하게 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해 왔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여성 엔지니어가 적기 때문에 여성의 취미와 취향에 맞는 분야는 기술 발전의 혜택이 적었다.”

20달러만 내면 옷 골라주는 서비스

스티치픽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온라인 의류 쇼핑몰’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옷을 입은 모델의 사진은커녕 의류 제품 사진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회원 가입 과정에서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키·몸무게는 얼마인지, 어떤 색상·패턴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직물이 있는지, 어떤 액세서리를 좋아하는지, 외출은 얼마나 자주 하는지, 기념일은 언제인지 등에 관한 질문들이다.

이렇게 ‘스타일 프로필’을 다 채웠으면 배송 날짜를 선택하고 스타일링 비용으로 20달러를 내면 주문이 끝난다. 스티치픽스는 입력 정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이 옷을 1차로 추천해주고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이 가운데 다섯 가지를 골라 배송한다. 다섯 가지 추천 의류를 받아보는 데 드는 비용은 20달러다. 이 중 하나라도 구매하면 구매 비용에서 20달러를 깎아 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은 반품하면 된다. 옷 한 벌 가격은 평균 55달러(약 6만원)이고 배송상자 안에는 코디법이 안내된 ‘스타일 카드’가 들어 있다.

“이커머스 성공은 소비자 경험에 달려 있다”

스티치픽스의 성공 비결은 상품이 아니라 ‘소비자 경험’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레이크 CEO는 “이커머스 성공의 열쇠는 즐거운 ‘소비자 경험’에 달려 있다. 스티치픽스 소비자에게 그 즐거움이란 편한 쇼핑, 나도 미처 몰랐던 내 취향을 꿰뚫는 옷이 배송돼 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객의 선택을 제거하면서 추천의 질이 중요해졌다. 처음엔 전문가의 도움을 받다가 이후 넷플릭스의 노하우를 활용했다. 2012년부터 60여 명의 데이터분석가를 채용했고 넷플릭스의 에릭 콜손 부회장을 영입하면서 큐레이션 능력을 끌어올렸다. 소비자 취향에 맞춰 콘텐츠를 추천하는 넷플릭스 AI 기능을 도입하면서 고객 맞춤형 추천은 더 정교해졌다. 그 결과 온라인 광고 하나 내지 않고 입소문을 타며 이름이 알려졌다.

고객 데이터가 늘면서 AI의 학습능력도 발전했다. AI 알고리즘이 제품을 추천해도 최종 선택은 전문가의 몫이다. 이 회사에선 1000명의 스타일리스트가 원격으로 근무한다.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에 전문가의 감각을 결합한 스티치픽스의 추천 기반 비즈니스 모델은 온라인 쇼핑에 지친 소비자의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80%의 고객이 추천받은 옷 중 최소한 한 개를 구매하고, 첫 구매 후 90일 안에 재구매에 나섰다.

스티치픽스의 성공은 비즈니스 모델 관점에서 암시하는 바가 크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시도는 힘들다는 기존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패션 의류는 개인 취향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제품의 형태와 사이즈 등 편차가 커 다양한 소비자 특성에 맞추기 위해 요구되는 프로세스가 매우 복잡하다. 사업을 위해 보유해야 하는 재고량도 많다.

물론 스티치픽스의 사업 모델이 완전히 검증됐다고 볼 수는 없다. 이제 설립된 지 7년밖에 안된 회사인 데다 계속해서 성공적인 기업으로 남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나스닥 상장에 성공한 만큼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 일단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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