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마드리드 회장은 이상적인 축구팀을 만들겠다고 당시 최고의 선수인 지네딘 지단과 호나우두, 피구에 베컴까지 연달아 영입, '지구 방위대'란 애칭을 얻으며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클럽이자 브랜드 가치가 높은 구단이 되었다. 흡사 최고의 배우들로 최고의 영화를 만드는 블록버스터처럼 말이다.
월드컵은 갈락티코스 전략처럼 세계인들의 화제와 관심을 만들어 담아내는 최고의 플랫폼 중 하나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팬들을 가장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기 때문에 최고의 블록버스터란 평가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월드컵이란 블록버스터의 주연이 선수들이라면 독보적 조연은 팬이다. 그들은 배우처럼 무대에 서지는 않지만 팬들의 응원, 환호, 지지와 참여 행동 등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팬들은 또 경기장을 살릴 뿐만 아니라 도시를 살리기도 하고 한 국가의 시장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하며 경기와 흥행 이란 승리의 경제적 함수를 완성시키는 분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러시아 현지의 축구 팬들은 벌써부터 설렘으로 경기를 기다리다 못해 이미 길거리 응원을 펼치며 흥을 내고 있다. 필자는 오늘 모스크바 도심의 루비안카(Lubyanka)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유니폼을 입고 자국을 응원하며 즐기는 팬들을 보고 경기보다 더 치열한 색깔 전쟁, 소리전쟁, '기(氣)전쟁'의 길거리 응원의 모습을 확인했다.
응원이 만들어 내는 문화는 도시 관광을 이끌어 내고, 의류 및 응원도구 판매를 높여 FIFA(세계축구연맹)와 조직위를 돕고, 지역에 머무르며 숙식을 하다 보니 지역경제에 일익을 담당하고 가장 중요한 경기의 활력을 불어 넣는다. 이 모든게 팬들이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경쟁심, 응원 전쟁에 묻어난다.
○유니폼의 색깔 전쟁
이미 모스크바 시내 곳곳의 도심은 자국 축구팀의 유니폼을 입은 축구 팬들과 관광객들이 펼치는 형형색색의 컬러로 도시 전체가 화려한 물감으로 물들인 듯 파티장 분위기를 연출중이다.
유니폼이 월드컵 패션이라 불리는 이유는 국가별 컬러로 빚어진 고유성 때문이다. 국기를 형상화 하고 민족의 애국심을 높이는 효과를 만들기 위해 국기의 색깔 배열로 유니폼 컬러를 결정하고 상하의와 양말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랑스는 파란색, 포루투칼은 자주색, 네덜란드 오렌지 색, 독일은 흰색, 브라질은 노란색, 한국은 붉은 색을 기준으로 만들어 진다.
단색을 기준으로 연결된 국기 색깔을 가지고 알록달록한 컬러와 세련된 디자인으로 선수의 이름과 등번호 나라이름을 단 유니폼을 입고 국기를 두른 모습이 인상적이다.
국가의 상징인 유니폼의 색깔과 그들의 모습을 보면 국가의 브랜드가 느껴진다.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니는 팬들의 숫자가 바로 그 나라의 국력이다.
응원에 따른 유니폼에 스타일이 더해져 '응원 룩'이란 새 트랜드도 형성된다. 함께 모여 국가의 응원가를 부르고, 인터뷰 하며 콘텐츠를 만들고, 한 가지 색깔로 통일 되어진 유니폼은 저마다 응원 그 이상의 보이지 않는 문화적 힘을 과시하기 때문에 유행을 선도할 수 있는 소구력 강한 콘텐츠로 여겨진다.
○응원의 소리와 메시지 전쟁
응원의 평가는 목소리 크기, 멋진 구호, 강력한 행위(퍼포먼스), 결속력 등에 따라 결정된다. 이곳 모스크바 시내엔 각국 팬들이 염원을 담아 내뱉는 다양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소리가 있는 곳에는 흥이 있고, 흥이 있는 곳엔 어김 없이 팬들이 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소음의 수준은 120 데시벨(dB).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홈구장인 올드드래포드의 경우 160 데시벨 이상의 소음을 만든다. 펜들이 염원을 담아 더해진 메세지의 위력인 셈이다.
월드컵은 이 보다 더 큰 소음이 만들어 질것이 분명하기에 소리는 곧 힘의 크기이고 메시지는 열정을 전달하는 도구가 된다.
소리와 메시지가 만들어져서 하나가 되고 그것이 결속력으로 승화되면 선수들은 큰 용기를 얻고 자신의 실력 이상의 기량을 발휘하게 만들 곤 한다.
○기(氣)를 끼로 만드는 전쟁
현장에서 만들어 내는 응원의 기운은 정신적인 면과 신체적인 측면으로 나뉜다. 경기의 가장 무서운 적은 두려움. 선수가 응원에 대한 기가 없어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이는 곧 자신감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기력과 승패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곤 한다.
2002년 월드컵이 전 국민이 만들어낸 응원기는 4강의 원동력을 만들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기가 하나로 뭉쳐졌다는 것은 나를 넘어 타인에게 전달이 된다. 승리를 염원하는 기와 패배를 예측하고 만들어 내는 기는 사뭇 다르다.
기는 마음의 자세이다. 기가 커지면 끼가 만들어 진다. 예를 들면 선수들이 기가 세지면 끼(가령 장끼, 똘끼, 인끼 등)가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응원은 축제가 되어야만 기가 살아나고 끼를 만드는 것이다. "대~한 민국"이라는 기는 우리가 끼를 만들 수 있는 승수 효과를 가져다주는 기의 함성이자 승리를 부르는 주문과도 같다.
○팬들이 만드는 경제력 전쟁
팬들이 얼마나 오느냐는 지역 경제에 직접적인 도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월드컵은 먼 거리를 한걸음에 달려와서 자국 팀을 응원하는 숫자가 바로 국가의 경제력이자 국력의 척도가 된다.
응원도 열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월드컵의 예선 기간이 15일 이고 장소가 3군데나 되기 때문에 경비가 만만치 않다.
결승전까지 갈수록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 한 달 가까이를 지역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다가 소리 지르고 큰 소리로 응원을 하다보면 에너지 소모량이 커지고 이를 위해 섭취하는 음식량 또한 많아진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 시에도 중국 경기가 한국에서 있느냐 일본에서 있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관광 공사는 중국 팀 경기를 한국에 유치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유니폼은 매년 월드컵 마다 바뀌는 이유도 새로움을 위한 것도 있지만, 디자인이 바뀌어야만 새로 구입을 하게 되고 이것이 매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성적도 유니폼 판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라이선스 제품으로 만들어 지는 각종 제품은 월드컵 재정의 효자 역할을 한다.
월드컵은 팬들이 만들어 내는 응원 문화로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가미되 산업적, 경제적으로 더욱 즐거운 돈 잔치로 변모하고 있다. 한국 팀은 죽음의 F조에 속하면서 "16강 진출 기대감이 낮아 국민적 관심과 응원이 다소 주춤 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필자가 "반드시 그렇지 만은 않을 것"이라고 반문하는 이유다.
백야로 잠 못 드는 하얀 밤의 승리가 월드컵 16강의 청신호를 가지고 온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 겠다. 하지만 응원의 힘이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가치와 값어치를 지녔는지 문화적 접근법으로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누가 알겠나. 선수단에 기를 불어 넣은 관심과 응원이 극적인 승리의 발판을 만들고 국가 행복, 국민 행복의 초석이 될 수 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월드컵을 응원하면서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입고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나. "하쿠나마타타~ 걱정 마! 모든 것들이 다 잘 될 거야." 우리의 응원 때문에 마법 같은 기적이 만들어 지면 어떨까. 이제 몇시간 후면 개막하는 월드컵. 팀 코리아의 유니폼 입고 소리 지르며 끼를 발산하는 대한민국 '팬 심'을 기대해 본다.
러시아(모스크바)= 김도균(한국스포츠산업협회장/경희대체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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