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AT&T·타임워너 합병, '칸막이 규제' 한국에 경고장 던졌다

입력 2018-06-14 19:55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거대 통신사와 복합미디어그룹 간 대규모 수직결합이 미국 법원에서 승인됐다. 가입자 1억1900만 명의 AT&T가 막강한 콘텐츠 파워를 가진 타임워너를 854억달러(약 92조원)에 인수하는 데 최종 걸림돌이 사실상 제거된 셈이다. 2016년 10월 양사 합병 발표 직후 미국 법무부는 반(反)독점 소송을 냈다. 이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타임워너를 소유한 CNN 간의 마찰이 작용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법원은 법무부가 주장한 ‘합병시 소비자 권리 제한, 이용료 인상’ 등이 근거 없다고 봤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블록버스터급’ 합병이 이뤄지게 됐다며, 미디어·통신산업의 지형 급변을 점쳤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이번 판결로 통신·배급업체와 콘텐츠업체 간 결합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미국 최대 케이블방송 컴캐스트는 2011년 NBC유니버설 합병에 이어, ‘X맨’ ‘심슨가족’ 등을 보유한 21세기폭스 인수를 놓고 디즈니와 경합 중이다. AT&T의 경쟁사인 버라이즌은 CBS 인수설이 돈다. 아마존, 애플까지 콘텐츠 확보에 몰입하고 있어 얼마나 광범위한 ‘빅뱅’이 일어날지 예측 불허다.

통신·방송 간 융·복합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파도나 다름없다. 전달매체가 케이블, 인터넷, 모바일 등으로 다변화하면서 ‘내 영역’ ‘네 영역’이 없어졌다. 이런 세계적 흐름과는 반대로 국내에선 방송·통신 간 결합이 원천봉쇄돼 있다. 2년 전 통신 1위 SK텔레콤과 케이블방송 1위 CJ헬로비전 합병을 공정거래위원회가 독과점이라고 불허한 이후 이렇다 할 움직임조차 씨가 말랐다. 매체 간 통합 경쟁은 차치하고, 전국 단위도 아닌 방송권역별 점유율 합산이라는 갈라파고스식 규제 속에, 경쟁에서 밀린 케이블 업계는 고사 직전이다.

선진국에선 시장에서 일어나는 자발적 합병에 대해 규제당국이 합리적 조건을 붙여 승인하는 게 보통이다. 반면 한국의 규제당국은 영역마다 칸막이를 쳐놓고, 공공성이란 추상적인 ‘전가의 보도’를 들이대며 대형화를 저지하는 데 급급하다. 이대로 가면 시장을 해외 미디어 공룡들에게 잠식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연간 콘텐츠 제작비로 8조원을 쓰는 미국 넷플릭스의 한국 사업 확장에 국내 콘텐츠업계가 ‘멘붕’에 빠진 것도 그런 맥락이다. 글로벌 통신·방송업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부는 제대로 살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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