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제는 '쓴 약'도 써가며 경제체질 쇄신에 나설 때다

입력 2018-06-1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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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에 압승 안겨준 민심 겸손하게 살펴
구조조정·규제개혁 등 '숙제' 서두르고
약자들 가슴펴게 할 근본 정책 고민해야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대부분 이겨 범여권이 국회의 과반수를 장악했다. 사실상 ‘여소야대’였던 상황에서 정부 여당이 정책을 일관되게 집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계에선 기대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와 여당이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소득주도 성장’으로 대변되는 실험적인 정책들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이미 곳곳에서 드러난 부작용으로 인해 ‘속도조절론’이 제기됐지만, 이번 선거로 묻혀버릴 공산이 커졌다. 당장 국회에서는 기업들의 경영권을 더 제약하는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내달에 결정될 내년 최저임금도 올해에 비해 15% 이상 올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또 한 차례의 경제 충격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여당이 차분하게 짚어보고 새겨야 할 게 있다.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여당에 표를 몰아준 게 정부 여당의 경제정책을 지지해서인가 여부다. 경제정책의 성과는 ‘투표’가 아니라 ‘지표’로 나타난다. 이미 대부분 경기지표가 악화되고 있다. 생산 소비 투자 모두 둔화세가 뚜렷하다. 실업자도 실업률도 역대 최대·최고 수준이다. 올해 목표성장률 3% 달성이 어렵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경제도 살얼음판에 올라섰다. 미국 중앙은행인 Fed는 어제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연 1.75∼2.00%로 0.25%포인트 올렸다.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몰리고 신흥국 통화가치가 급속히 하락하면서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올 것이라는 ‘6월 위기설’이 더욱 확산되는 조짐이다. 한국 기준금리와의 격차가 최대 연 0.5%포인트로 벌어지게 됐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한·미 기준금리가 1%포인트 이상 확대되면 국내에서 외국인 자금이 월 평균 2조7000억원가량 유출될 수 있고, 주가는 9% 하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도 신흥국 위기의 안전지대가 아닌 셈이다. 선진국 간 통상 분쟁도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엔 대형 악재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교역중단까지 언급해가며 보복을 다짐하고 있어 불똥이 어디로 튈지 예측 불허다.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세계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정을 동원한 돈 풀기에 의존하는 정책기조를 고수해왔다. 어제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한 내년 예산·기금의 총지출 규모는 458조원으로 올해보다 6.8%나 증가했다. 특히 교육 국방 복지 외교통일 등의 비용이 크게 늘었다. 정부는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조만간 보유세를 올리는 증세 카드를 내놓을 예정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미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부작용이 나면 당장은 돈을 풀어 막을 수 있지만, 재정과 세금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결국 그 부담은 다음 정권, 다음 세대에 돌아간다. 기업의 경쟁력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경제체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성장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경제 구성원들의 고통 분담 없이는 산적한 경제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음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설명하고, 필요한 정책을 실기하지 않고 펴나가는 게 중요하다. ‘쓴 약’도 과감하게 처방을 해야 한다.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구조조정과 서비스업 규제 개혁 등 혁신성장을 위한 조치들을 더 이상 미적거려서는 안 된다.

4차 산업혁명도 시장 활성화에서 해법을 찾지 않으면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세계는 뛰어가는데 우리는 걸어가고 있는” 분야가 한둘이 아니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노동개혁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친노동 정부를 표방했지만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으로 한계 노동자들의 생활은 오히려 악화됐고 실업자는 늘었다. 이들 사회적 약자들의 가슴을 펼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경제 구성원에게 고통을 주는 ‘쓴 약’ 처방은 적지 않은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정책은 지지율이 높은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여당과 정부가 이번 선거 승리를 우리 경제의 체질을 쇄신하는 계기로 삼아 새로운 도약의 토대를 다진다면, 우리 모두에게 더욱 값진 승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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