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5) 양육(養育)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이렇게 시작한다. “까마득한 옛 카드모스로부터 새롭게 양육된 내 자녀들이여!”
오이디푸스가 테베 궁전 중앙에 놓인 제단에 모여 있는 사제들에게 건넨 말이다. 소포클레스는 다른 위대한 작가들이 그랬듯이, 첫구절에 비극 전체의 주제를 숨겨놨다. 사제들은 무엇인가를 탄원하는 사람처럼, 양털을 감은 나뭇가지를 들고 치료의 신이자 역병의 신인 아폴로 제단 앞에서, 그들의왕 오이디푸스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 왕으로 위엄 있는 풍채를 지녔지만 치명적으로 다리를 절뚝거렸다. ‘아들이 자신을 살해하고 왕이 될 것’ 이라는 델피 신탁을 받은 테베 왕 라이오스가 아들 오이디푸스가 태어나자마자 그의 두 발을 실로 꽁꽁 묶어 야산에 버렸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스스로의 힘으로 두 발로 일어서서 걸어야 하는 인간의 상징이다.
유로파
소포클레스가 ‘테베’라는 이름 대신 ‘카드모스’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카드모스라는 이름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지중해를 건너 페니키아(오늘날 레바논)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그리스 문명의 기원에 대한 실타래가 풀리기 때문이다. 페니키아의 항구도시 티레(Tyre)의 왕 아게노르(Agenor)에게는 아름다운 딸 유로파(Europa)가 있었다. 그녀는 지중해가 보이는 티레의 해변에서 꽃을 따고 있었다. 유로파가 작은 꽃다발을 만드는 동안, 그녀 앞에 보석과 같이 반짝이는 뿔이 달린 하얀 황소가 갑자기 나타났다. 이 눈부신 황소는 유로파에게 다가와 그녀가 주는 풀을 받아먹으며 따라다녔다. 유로파는 이 황소 뿔에 화환을 걸어주고 그만 이 매력적인 황소의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황소가 급변해 달리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지중해 바다로 돌진했다. 유로파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황소 등에서 내리지 못했다. 황소는 유로파를 등에 태우고 지중해를 헤엄쳐 건너 크레타 섬에 도착했다.
황소는 다름 아닌 제우스 신이다. 그는 자신의 바람기를 항상 걱정하는 아내 헤라를 속이기 위해 황소로 변신해 유로파를 납치했다. 제우스와 유로파는 크레타 섬의 왕인 미노스와 정의롭기로 유명한 라다만토스를 낳았다. 제우스는 페니키아 공주인 유로파의 이름을 따서 크레타 섬을 비롯한 서양 대륙을 ‘유럽(Europe)’이라고 불렀다. 유럽이란 단어의 어근은 그리스어가 속한 인도-유럽어가 아니라 페니키아어가 속한 셈어에서 유래했다. ‘유럽’은 셈족어로 ‘해가 지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라바/파’의 명사형으로 ‘서쪽’이란 의미다. 유럽은 페니키아가 속한 아시아에서 보면 해가 지는 쪽이기 때문에 ‘유럽’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아랍(Arab)’이란 용어도 ‘유럽’과 같은 어원에서 유래했다. 지명으로서 ‘아랍’이란 용어는 기원전 11세기께 아시리아(Assyria) 쐐기문자 문헌에 등장한다. 아시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치(티그리스 강 근처)에서 서쪽, 즉 오늘날 시리아와 아라비아에 한없이 펼쳐진 사막지역을 ‘아랍’이라고 불렀다. ‘유럽’과 ‘아랍’이 같은 어원에서 출발한 단어라는 점이 흥미롭다.
카드모스
아게노르 왕은 아들들을 사방으로 보내 유로파를 찾았다. 이 아들 중 한 명이 ‘카드모스(Cadmus)’다. 그는 여동생 유로파의 행방을 찾기 위해 레바논에서 그리스로 항해해 델피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아폴로 신으로부터 신탁을 받을 참이다. 신탁의 내용은 이렇다. “너의 여동생을 더 이상 찾지 말라. 그녀는 제우스의 정부가 됐다. 너도 그리스에 남아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시를 건설해라.”
카드모스가 아폴로에게 새로운 도시를 세울 장소를 묻자 ‘두 개의 달을 가지고 있는 황소가 있는 곳’이라는 신탁을 받았다. 카드모스와 페니키아인들은 델피 신전을 떠나 길을 가다 밤하늘의 달처럼 보이는 빛이 휘황찬란한 뿔을 지닌 황소를 발견했다. 그들은 이 황소를 따라 며칠 동안 험준한 산맥을 넘었다. 그들이 마침내 도착한 곳은 ‘황소의 땅’이란 의미를 지닌 보이오티아(Boeotia) 지역이다. 카드모스는 이곳에서 여신 아테나를 위한 제단을 짓고 그녀를 위해 황소를 번제로 바칠 셈이다. 그러나 제사에 사용한 정화수를 찾을 수 없었다. 그가 겨우 찾은 샘터에는 야만과 전쟁의 신인 아레스의 자식인 전설적인 용이 지키고 있었다. 용이 카드모스에게 샘물 주기를 거절하자, 카드모스는 용을 살해하고 정화수를 가져가 제사를 지낸다.
아레스는 이 용맹스러운 카드모스에게 용의 이빨들을 땅에 심으면 칼과 창을 지닌 전사들이 나올 것이라고 알려준다. 카드모스는 자신의 고향에서 온 페니키아인들과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보이오티아인들과 힘을 합쳐 ‘테베’라는 도시를 건설한다. 아레스는 카드모스의 폭력성을 제어하기 위해 자신의 딸이자 ‘조화’와 ‘질서’를 상징하는 하르모니아(Harmonia)와 결혼시킨다. 카드모스는 마침내 그리스반도에 문명이란 질서를 정착시켰다.
‘카드모스’라는 이름은 야만과 문명을 구축하기 위한 폭력, 그리고 문명의 상징인 도시와 문자가 모두 들어 있는 명칭이다. ‘카드모스’도 ‘유로파’와 마찬가지로 페니키아에서 온 셈어다. 셈족어 어근인 ‘케뎀(qedem)’의 의미는 ‘동쪽’이란 장소적 의미와 ‘아주 오래된’이란 시간적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다. 그리스어 ‘카드모스(kadmos)’는 셈족어 ‘케뎀’의 차용어다.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에 문자를 전달해준 사람으로 카드모스를 언급한다. 카드모스는 야만 상태의 그리스 반도에 페니키아 문자를 전달하고 테베라는 도시를 건설한 ‘문명의 창시자’다.
아폴로 신전
《오이디푸스 왕》의 첫 장면은 바로 이 문명이 자리잡은 최초의 순간에 대한 회상이다. 테베 사제들은 아폴로 신전으로 들어선다. 이 장소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예술, 종교의 핵심에 스며들어 있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 혹은 ‘잠재된 상태’인 천성(天性)과 ‘인위적으로 개발된 상태’인 문화(文化)가 교차하는 갈림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천성을 ‘피시스(physis)’, 문화를 ‘노모스(nomos)’라고 불렀다. 아폴로 신전은 인간과 자연을 공간적으로 구분하는 차이(差異)다. 그곳은 안전하고 내적으로 완성된 질서와 그 주위를 둘러싸고 호시탐탐 그 평온한 질서를 파괴하려는 무질서한 외부인 ‘아그로스(agros)’를 가르는 경계다. 아그로스의 형용사인 ‘아그리오스(agrios)’는 ‘거친; 야만적인’이라는 의미다.
오이디푸스는 역병이 창궐한 테베 성 바깥(무질서를 상징)에서 잠시나마 역병을 방어하는 안전한 공간인 아폴로 신전으로 들어온다. 그러고는 아폴로에게 테베를 강타하고 있는 역병의 원인을 찾고 있는 사제들에게 말한다. “까마득한 옛 카드모스로부터 새롭게 양육된 내 자녀들이여! 무슨 일로 그대들은 탄원하는 사람들처럼, 양털실을 감아 맨 나뭇가지를 들고 여기에 왔느냐? 왜 공기가 향연(香煙)과 더불어 탄원을 위한 기도와 죽은 이들을 위해 곡하는 노래로 가득 찼느냐?”(1-5행)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다스리는 도시를 ‘테베’라는 도시 이름 대신에 ‘까마득한 옛 카드모스’로 부른다. 카드모스라는 신화적인 인물은 문명의 신 아테나에게 제주를 바치기 위해 괴물 용을 살해해야 했다. 카드모스는 태생적으로 혼돈과 파괴의 천성을 지닌 장소였다. 오이디푸스는 그런 본성을 인위적인 노력으로 제어한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이 노력을 ‘양육’이란 단어로 설명한다.
1행에 사용된 ‘양육’이라는 그리스 단어 ‘트레페(trephe)’는 ‘식사’ ‘교육’ ‘양육’ ‘동물을 키우기’ ‘동물을 키우는 장소’란 의미다. 오이디푸스가 통치하는 카드모스(테베)라는 도시는 인간이 지닌 거친 본성을 발산하는 장소가 아니라 도시라는 추상적인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질서와 조화를 교육하는 절제된 공간이다. 소포클레스는 이 구절에서 도시라는 문명과 문화의 근간을 선언한다. 아테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절제된 문화적인 심성이 아테네 문화를 지탱하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이디푸스라는 비극적인 인물을 통해 한 시민의 개선이나 혁신이 얼마나 힘든지를 무대 위에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여과 없이 보여줄 것이다. 그는 묻는다. 인간의 행위와 그 행위의 추상적인 체계인 문화는 자신이 속한 환경, 즉 가정이나 사회에 의해 결정되는가? 혹은 그 사람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가? 소위 인간 행동은 천성에 의해 결정되는가? 혹은 양육에 의해 결정되는가? 원형극장에 모인 아테네 시민들은 인간이 천성의 폭력적인 야만성을 제어하고, 비극이라는 대중교육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양육’될 것이다.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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