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도의 나라, 몰타
서울의 절반 크기… 기사단이 지배했던 섬나라 몰타
골목마다 기사의 흔적 수놓은 요새도시
고조섬에선 다시금 '왕좌의 게임' 감동을
지중해는 문명의 거인과도 같은 세 대륙 사이에 갇힌 바다다. 북쪽으로는 유럽이, 남쪽으로는 아프리카가, 동쪽으로는 아시아가 있다. 그 바다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섬나라가 하나 있다. 몰타의 총면적은 316㎢, 서울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작은 국가에 퇴적돼온 문화적 유산은 더없이 풍요롭다. 몰타는 중세 이후 대륙과 대륙을 잇는 중요한 무역항으로 등극했고, 그 지정학적 위상은 항공무역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계속 유지됐다. 나라가 세워진 이후 굳건하게 이어온 가톨릭의 전통은 나라 곳곳에 경이로운 바로크 성당들을 남겼다. 지중해 국가들이 대체로 그렇듯, 몰타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세운 도시들뿐 아니라 자연이 만든 풍경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코발트빛 바다와 온화한 날씨, 석회암 지형이 형성한 절벽과 동굴의 절경 덕분에 이곳은 유럽 전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는 여행지다.
몰타=글·사진 정미환 여행작가 mihwanjung@gmail.com
성 요한 기사단이 지배했던 신의 나라
몰타의 역사는 16세기 초 시작됐다. 그전까지 이곳은 아랍과 시칠리아, 스페인에 차례로 지배당해온 외딴섬에 불과했다. 십자군 전쟁이 끝난 뒤 예루살렘을 떠나 방랑하던 한 무리의 기사들이 섬에 상륙했다.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들, 해자를 두른 요새와 성배를 둘러싼 모험이 아직 전설 속 이야기로 취급되기 전, 선명한 현실로 존재하는 시절이었다.
몰타를 건국한 성 요한 기사단은 몰타에서 잡은 매 두 마리를 매년 스페인 국왕에게 바친다는 조건으로 섬을 임차했다. 건국 배경에서 짐작할 수 있듯, 몰타의 국가 이념은 무엇보다도 신에 대한 종교적 헌신이었다. 성 요한 기사단은 이슬람이 지배하던 중세 예루살렘에서 기독교 순례자들을 치료하고 보살피던 조직이었다. 서유럽의 명문가 출신 기사들로 구성됐으며, 순결과 청빈, 복종을 기사단의 이념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스도교가 서구문화의 근간이었던 시기, 몰타의 고귀한 명분은 교황청과 유럽 각국 왕실의 후원까지 얻었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은 몰타 정부에 약탈의 명분을 주기도 했다. 이교도들을 벌하고 국가 재정을 효율적으로 충당하기 위해 성 요한 기사단은 용감하고 드센 선장들을 고용한 뒤 터키의 갤리선으로부터 향신료와 보물들을 탈취해 유럽으로 수출했다. 범선이 바다를 누비는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자, 몰타의 지정학적 위치는 더없이 중요해졌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작은 섬에는 유럽과 중동의 흔적이 함께 쌓여갔다. 몰타의 언어는 아랍어와 같은 어족에 속하지만 정작 문자로 표기할 때는 로마자를 사용한다. 신선한 프레시 치즈, 다채로운 파스타와 토끼 요리를 아우르는 몰타의 전통 식당 메뉴들은 남부 이탈리아의 요리들과 비슷한 반면, 만찬이 끝난 식탁 위에는 터키식 가루 커피가 놓인다. 작은 시골 마을 광장에서도 장엄한 바로크식 성당을 목격할 수 있지만, 건물마다 돌출된 테라스들은 아랍의 후궁 궁전으로부터 유래했다. 신이 직접 설계한 듯 성상들로 가득한 도시 안에서 몰타의 문화는 이교도의 매력마저 품은 채 혼란스럽게 발전했다. 기사단의 지배는 수세기 후 막을 내렸다. 프랑스 혁명 직후 나폴레옹이 이끄는 공화국 군대가 성 요한 기사단을 몰타에서 쫓아냈다. 기사들은 바티칸으로 옮겨가 교황 산하의 작은 조직으로 남았다. 나폴레옹마저 몰락한 이후 이곳은 영국의 식민지가 됐고, 1964년 마침내 하나의 국가로 독립했다. 근대사의 흔적은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와 몇몇 영국식 펍의 존재로만 확인될 뿐, 이곳의 풍경은 여전히 중세의 경이로운 유산들로 이뤄진다.
예술 애호가 발길 끊이지 않는 성 요한 성당
몰타의 흥미로운 연대기가 가장 농밀하게 압축된 곳이 바로 몰타의 수도 발레타(Valletta)다. 발레타는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일한 도시다. 1565년 성 요한 기사단이 오스만튀르크 터키군과 공방전을 벌이던 당시, 난공불락의 요새로 설계된 발레타는 높고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둥글게 파인 해자를 건너 관문으로 들어서면, 희미한 레몬빛으로 반짝이는 고풍스러운 석회암 건물들이 발길을 맞는다.
성 요한 기사단이 이 요새 도시를 세우기까지 30년의 세월이 걸렸다. 긴 시간이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시가지 곳곳의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들을 구경하다 보면 30년 만에 이 정도의 스펙터클을 이룩해낸 저력에 새삼스레 놀라게 된다. 발레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이름은 성 요한 성당(St John’s Co-Cathedral)이다. 외관은 다소 단조롭지만,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시야를 압도하는 웅장함에 말문이 막힌다. 아라곤부터 이탈리아까지 기사들의 출신 지역에 따라 분배된 예배실, 아름답게 도금한 벽과 갖가지 색의 대리석으로 완성한 바닥 등 성당 전체가 중세 예술사의 증거나 마찬가지다. 성 요한 성당에는 바로크 미술의 대가 카라바지오의 대작 두 점이 남아 있어, 예술 애호가들의 순례가 1년 내내 이어진다.
공관과 성당을 제외하면 16세기에 지어진 건물들은 이제 레스토랑과 상점으로 빼곡하다. 건물마다 내어놓은 야외석에서 몰타 전통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골목골목을 느긋하게 걷는 시간은 꽤 즐겁다. 도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서다 보면 저 멀리 골목 끝으로부터 푸른빛이 시야에 들어온다. 도시의 가장자리이자 지중해의 보석, 발레타 항구에 도착하는 순간이다. 항구는 가까이에서 봐도 아름답지만, 최고의 전망대는 기사단의 휴식처였던 바라카 가든(Barracca Gardens)에 있다. 바라카 가든의 테라스에서 바다를 굽어보면 저 옛날 이슬람 군사들 대신 고급스러운 요트들이 발레타 앞바다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다.
몰타의 과거 흔적 찾을 수 있는 임디나
몰타의 과거를 목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도시가 임디나다. 발레타에서 서쪽으로 15㎞, 거대한 바위등성이에 놓인 임디나는 3000년 전 세워졌다. 기원전 1000년께 페니키아인들이 몰타를 침범해 세운 은신처가 이곳이었다. 성 요한 기사단이 세력을 잡은 후 이곳은 귀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됐다. 그래서 한때 임디나는 몰타의 정치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아랍 양식의 골목들과 바로크 양식의 거리들이 도시를 양분한다. 예전에는 고귀한 도시(Cita Notabile)라고도 불렸는데, 현재까지도 이곳에 살고 있는 몰타의 상류층 가문들로부터 유래한 별명이다. 아름다운 대광장과 11세기 지어진 시쿨라 노르만 대성당(Roman Catholic Sicula-Norman Cathedral)만 구경한다면, 임디나는 잘 보존된 16세기 유럽 도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사들이 이곳에 상륙하기 전 아랍 통치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옛길의 공기는 또 다르다. 정교한 건축 양식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투박한 중동식 건물들이 골목을 호위한다. 가끔씩 고양이 그림자만 얼씬거리는 한적한 소로 위로 오직 햇빛만이 포근하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레몬빛 뒷골목을 무작정 걸어보는 시간은 그야말로 여행자만의 호사다.
유서 깊은 도시들 대신 지중해의 자연을 만끽하고 싶다면 바다로 향하는 것이 좋다. 임디나에서 북쪽으로 20여 분, 해안에 있는 생 줄리앙(Saint Julien)과 슬라이마(Sleima)는 이 나라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젊은 도시들이다. 여름에는 세계적인 디제이들을 초대하는 음악 페스티벌과 열광적인 파티가 한철 내내 열리며, 번화가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바위 해변에는 헤엄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녹슨 난간에서 짙푸른 지중해로 뛰어드는 인파 때문에 수영복 한 벌 챙기지 않은 여행자의 마음조차 그저 들뜬다. 생 줄리앙은 다양한 특급 호텔과 고급 리조트의 집결지라 여행의 거점으로 삼기에도 좋다.
미드 ‘왕좌의 게임’ 촬영지 드웨이라 해안
몰타는 두 개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다. 치르키와(Cirkewwa) 항구에서 출발하는 고조 섬(Gozo Island)행 페리에 오르는 순간, 여행의 시침은 조금 더 느릿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다른 도시들이 있는 몰타 본섬에 비해 고조 섬은 좀 더 작고 한가로운 지역이다.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드웨이라(Dwejra) 해안의 절경 아주르 윈도(Azure Window)였다. 아치형 바위 틈으로 지중해의 푸른 파도가 보이는 풍경이 마치 창문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자연이 빚은 이 비경은 오랜 풍화작용으로 몇 해 전 무너져내렸다. ‘담청색 창문’은 사라졌지만, 드웨이라의 압도적 풍광은 변함없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1과 시즌의 마지막 부분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됐다. 호화로운 배우와 소품들은 오간 데 없고, 이젠 드넓은 암반 위로 해풍만이 불어올 뿐이다. 그러나 웅장하게 꾸며낸 환상들의 배경으로 이보다 더 합당한 장소는 드물 것 같다. 약 2800년 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스의 대문호 호메로스는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고조 섬을 등장시켰다. 오디세우스가 님프 칼립소와 함께 7년을 머물렀던 동굴이 고조 섬 북쪽에 있다.
헤엄도 트레킹도 체력이 제법 소모되는 활동이다. 다행히 고조 섬은 맛있고 신선한 음식들로 이름 높은 지역이다. 특산물 고조 치즈는 몰타의 어느 식당에서나 주문할 수 있지만, 그날 아침 짠 양젖으로 만든 치즈는 고조 섬에만 있다. 푸딩처럼 부드럽고 담백한 치즈 위에 와인으로 맛을 낸 소금과 올리브 오일을 조금 뿌린다. 통째로 구운 농어의 살점이 입안에서 흩어지는 사이, 몰타산 샤도네이를 와인 글라스에 재차 따른다. 지중해의 풍미가 입안에서 풍요롭게 춤춘다. 신나지만 노곤한 여정 가운데 우연히 맛보는 만찬이야말로 여행자의 커다란 즐거움일 것이다. 그 식탁이 고조 섬에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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